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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31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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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어른이] 일찍 어른이 된 아이는 불행하게도 성숙하다 유치할 때 유치하지 못하고 울어야 할 때 울지 않는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그저 참고 또 참고 가장 처음 배운 것은 감정을 숨기는 방법 남들은 철들었다 칭찬하지만 실은 마음에 철심이 박힌 것 로봇처럼 딱딱해진 아이는 그렇게 세월만 계속 먹다가 어른이 되고 난 후에야 다시 아이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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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길]
[내리막길]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다고 그렇게 말하지만 내리막길이 싫다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멋대로 속도가 붙어서 난 아직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한없이 밑으로 내려가 버린다 그 끝없는 추락을 멈추는 방법은 오직 발을 멈추고 넘어지는 것뿐 그렇게 흉터가 생기고 나서야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려버린다 힘겨운 오르막길보다 끝 모르는 내리막길이 훨씬 더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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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자전거]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날 세상을 정복하겠다 했지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자전거는 빨래걸이가 됐지 매일 나를 원망하듯 노려보고 나는 애써 보지 못한 채 하고 원래 의지라는 게 그렇잖아 있다가도 금세 사라져버리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작은 소리로 얼버무렸다 새삼스레 뭘 처음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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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
[권태] 인생의 권태기가 왔다 무얼 해도 지루해지고 숨만 쉬어도 답답하다 누군가와의 권태기면 소통해서 풀면 되는데 나 자신과의 권태기라 어떻게 풀 수가 없다 그저 부정적인 마음을 혹여나 옮기지 않도록 하하호호 웃으며 거짓놀음을 한다 그러고 나면 남는 빠져나올 수 없는 끝이 없는 우울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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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
[유실물] 행복역 7번 출구 유실물센터에는 수없이 많은 추억들이 잠들어있다 바람에 날려간 파란모자 안에는 갓 학교에 들어간 아이의 이름과 새로운 생활에 대한 설렘이 있고 새빨갛고 작은 돈주머니 안에는 갓 교복을 졸업한 소녀의 이름과 생애 첫 자유에 대한 쾌감이 있고 낡고 오래된 휴대전화기 안에는 갓 새 양복을 산 청년의 이름과 그간의 고생에 대한 선물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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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
[조율] 기운이 빠져 다리가 꺾여버렸는데 모른 척 하고 힘으로 눌러버렸구나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비명을 견딜 수 있다는 각오로 듣고서 나의 즐거움을 위한다고 너의 괴로움을 외면했다 청아하고 매력적인 선율이 한 순간 귀를 찢는 굉음으로 바뀐 걸 모르고 왜 움직이지 못하냐고 쾅쾅 내리치기만 했다 이제야 조금씩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너를 바라보며 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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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서커스] 서커스의 막이 올랐다 째깍째깍 시계에 맞춰 재깍재깍 일하러 간다 딩동댕동 종소리 듣고 허둥지둥 교실로 간다 똑같은 공연을 위해서 매일 불구덩이를 넘고 보는 사람 하나 없어도 끝나지 않는 재주넘기 저글링 하듯 반복되는 끝이 없는 인생 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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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집]
[빈 집]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집에 간간히 스치는 바람만이 조용히 생기를 대신하고 문득 눈에 보인 건 바닥에 뒹구는 쪽지 다가가기 두려워 바라보는데 바람이 알아채고 펼쳐주었지 삐뚤빼뚤 그려져 있는 엄마 아빠 나 강아지 무언가에 홀린 듯 걸어가는데 문득 귀에 들린 날이 선 굉음 어느새 내 눈 앞에 나타난 건 살벌하게 다투는 여자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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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
[월광] 오늘 밤도 나는 어김없이 달과 눈싸움을 해야 한다 자꾸만 눈을 감기는 빛을 참아가며 이유도 의미도 없는 일들을 하면서 내 생은 왜 이럴까 한탄할 새도 없이 지독한 커피 한 잔에 모든 걸 기대어놓고서 끝 모를 고독의 밤을 또다시 견뎌내야겠지 허나 창밖을 보니 달빛도 뵈지 않아 오늘 밤은 완연히 홀로 지새우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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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
[파편] 활활 타버린 마음의 재 속에 조각난 파편만이 남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던졌던 말이 붉은 덩어리 속 파편이 되어 너의 가슴을 후벼 파버렸다 아무 생각 없이 휘두른 손이 푸른 덩어리 속 파편이 되어 너에게 상처를 남겨버렸다 여기저기 흩어진 파편을 하나하나 소중하게 모으다 모서리에 손가락이 찔렸다 그 때 넌 이런 기분이었나 소중한 만큼 편했지만 편한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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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마녀] 인생은 영화 속 이야기처럼 악인과 선인이 있어야 해서 모두가 착할 수 없다고 누군가는 악해야 한다고 그래서 마지못해 악인을 맡았다고 어린 시절 입을 모아 무시무시한 성에 살 것이고 피도 눈물도 없을 거라 한 내가 잠에 빠진 줄 알고 눈물을 글썽이며 내뱉던 마녀 선생님의 고백이 유난히 떠오르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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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계절]
[기억하고 싶은 계절] 붉은 빛의 꽃들이 만개했던 두근거리는 설렘을 준 봄을 뛰노는 아이들과 넓은 바다 달콤한 빙수를 먹던 여름을 걷기만 해도 느껴지는 감성이 갈색 빛으로 물들였던 가을을 새하얀 눈꽃에 눈이 부시던 어느 때보다 따스한 겨울을 살아있음을 느꼈던 그 계절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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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
[심해] 어느 날 벗이 나에게 물었다 너는 어찌하여 자꾸 현재를 잊으려 하니 쿵 가슴을 얻어맞은 듯 모든 사고체계가 멈췄다 때 묻지 않은 사랑을 했던 매일을 치열하게 불태웠던 그 시절의 내가 가슴에 남아서 시간을 되돌려달라고 자꾸 비명을 질러대다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내밀었는지 세월이 흘러가고 어느 날이 되면 그 날의 나는 오늘의 나를 그리며 또다시 과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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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것이]
[반짝이는 것이] 반짝이는 것이 별이라 하면 나 실없이 웃음 지을 터인데 반짝이는 것이 태양이라 하면 나 자그만하게 끄덕일 터인데 어찌하여 그대 반짝이는 것이 나의 눈이라 하여 고개 들지 못하고 차마 쉬이 입을 떼지 못하고 뜨신 한숨만 푹푹 쉬게 하나 매서운 밤바람이 무색해질 만큼 얼굴은 터질 듯이 달아오르는데 그대 나의 낯빛을 보며 눈이 부시도록 곱다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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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 두편 [하데스] 그리고 [인간 마스크]
[하데스] 달빛이 눈부시게 밝은 밤 그들만의 축제가 열렸다 그들만의 언어 그들만의 일상 그들만의 행복 그들의 잔치에 낄 수 없는 도시 속 숨은 하데스들은 추운 지하에서 슬픔을 흘리고 설움에 갇힌다 달빛이 눈부시게 밝은 밤하늘 아래 하데스는 모든 걸 잃은 채 살아간다 [인간 마스크] 질서를 지키지 않는 얼굴은 가리지 않고 보이는 것만 보려하는 눈은 가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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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
[폐기] 유통기한은 지난 지 오랜데 너무 오랫동안 갖고 있었다 기적은 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닌데 어리석게도 믿음을 버리지 못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데 너는 다를 거라 여겼다 네가 오늘 무얼 먹었는지 더 이상 궁금하지가 않다 네가 오늘 왜 우울한 지 묻고 싶은 생각이 없다 우리는 철저하게 타인이 되었고 이제 이 지독한 벌을 끝내야한다 서로의 목소리가 소음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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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
[주마등] 생명이란 건 참으로 작고 보잘것없는 것 깨어지기 쉬운 유리처럼 한 순간에 부서져버리는 왜 얼굴이 반쪽이 되었냐는 어머니에게 귀찮게 굴지 말라 매정하게 소리쳤던 것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던 친구의 연락을 외면한 것 마지막이 되어버린 첫사랑에 최선을 다해 임하지 않은 것이 이리도 후회될 줄 알았다면 왜 나는 끝까지 어리석게도 작별의 편지 한 줄을 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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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체]
[피사체] 배경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잘려나가든 색이 사라져버리든 어차피 모든 풍경은 널 위한 들러리이니 주위의 초점을 모두 무너뜨리고 오로지 너에게만 집중하는 것은 네가 걷는 길은 온통 빨갛게 물들어 아름다움에 희생된 자들로 채워지고 그들에게는 모든 물감이 투명하나 너에게만은 고운 빛깔이 입혀지지 흑백 배경 속에서 고고하게 위엄을 뽐내고 서 있는 너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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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
[카페인] 어젯밤 꿈속에도 그가 나와 나를 잡아먹으려 쫓아왔다 똑같은 꿈을 꾼 지 한 달째 나는 조금씩 잡아먹히고 있다 그저께는 다리까지 어제는 허리의 반이 얼굴 없는 괴물의 입속으로 무참히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이대로 나를 잃는 게 두려워 커피와 초콜릿을 쑤셔 넣었다 ㅡ각성제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19살 김모군의 마지막 일기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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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
[파스타] 펄펄 끓는 물을 견뎌봤자 불쾌한 끈적임을 참아봤자 뭐하나 내 본모습엔 관심 없는데 차가운 칼날을 견뎌봤자 미끌대는 기름을 참아봤자 뭐하나 어차피 버려질 텐데 흐물흐물해져버린 면과 그 속에 숨어있는 버섯은 몸 위에 우아하게 뿌려진 소스를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노려보면서 동시에 투덜거린다 저거 순 날로 먹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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