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머리가 길면 안 돼"

yunta(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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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머리가 길면 안 돼!"

한산한 낮 시간의 조용한 지하철 안이었다. 큰 목소리는 아니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가 똑똑하게 잘 들린다. 선배와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며 가는 중이었다.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오던 시절이었다. 자주 여자로 오인받았으며 성추행도 당하고 시비 거는 수컷들도 가끔 있었다. 별로 대수롭지는 않았으나 자연스럽게 그 소리가 나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바로 앞에 한 남자 노인이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허름한 옷차림에 왜소한 체격이다. 내가 잠시 그 노인을 쳐다보자 그 노인의 입가가 우물우물 삐쭉거리며 움직거린다. 그런데 그 노인은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난 고개를 돌려 다시 옆에 앉은 선배와 대화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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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인의 입가 근육이 꿈틀대는 모습이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그 후로도 그런 움직임을 가끔 보곤 한다. 젊은 사람들이 그런 입모양을 하는 것을 본 적은 없다. 그런 입모양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 노인이었다.

그 노인은 자신이 상대방에게 '충고'를 하는 순간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벗어나는 사람을 꾸짖은 것이 자랑스럽다. 스스로 기특하다. 자신이 아직 힘 있는 수컷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래도 혹시 저 앞사람이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까 두렵다. 저 앞사람이 무슨 말을 하거나 행동을 취하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두려움을 감춰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보통 남자 노인들은 입과 턱을 삐쭉거리며 우물거린다.

몇 년 전에 50도 안된 남자한테서 그런 입술과 턱의 움직임을 보았다. 상황은 약간 비슷했다. 자신의 '남자'다움과 단호함을 상대방에게 과시하며 '충고(조언)' 하는 순간이었다. 그 말을 끝내고 잠시 공백이 있다. 상대방이 맞받아칠지도 모른다. 그 시간 동안 자신의 두려움을 의도적으로 감추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입술과 턱이 움찔거린다.

50도 안된 남자에게서 그런 표정이 나오는 것을 본 건 처음이었다. '아, 이 양반도 이제 나이 먹었구나. 청년의 활기와 싱싱한 근육이 시들었구나.'

보수적이고 고집스러운 성격을 가진 노인들의 얼굴, 특히 입가와 턱을 보면 마치 불도그 같다. 입가의 양쪽이 더 처지고 앙다문 모양이 된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굳게 믿는다. 그런데 과연 정말로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일까. 어떨 때 보면 그런 것 같지 않다.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만 해'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감이 없고 두려워 보인다.

거울을 보면서 매번 확인한다. 나도 저런 입모양으로 변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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