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고등학생 때부터 일기를 써왔다.
처음에는 매일 쓰려고 노력했으나,
똑같은 일상의 반복되면서 쓸 만한 내용이 없어졌다.
그 자체로 나에게 하나의 강박감이 될 것 같아서 매일 쓰지는 않고,
기록하고 싶은 사건이나 생각이 들면 쓰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쓰고 있다 .
지금 몇 년이 지나서 다시금 일기장을 펼쳐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일단, 글씨를 너무 못 써서 알아보기가 힘들었고(지금도 그렇긴 하다.), 오글거리는 문장과
그에 대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일기 내용 대부분이 자책, 비하의 내용으로 가득 했었다.
'지적 생활 습관'의 작가 도야마 시게히코는 일기의 효용성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었다.
'일기는 필요 없는 것을 잊기 위해 존재한다.'
쓴 것은 잊기 쉽고, 잊으려면 써야 한다는 사실을 난 무의식적으로 알았을까?
난 일기를 내 감정의 배출구로 사용해오고 있었다.
일기란 감정의 배출구에서 항상 느껴지는 감정들이 있었다.
열등감, 자책감, 강박감 등 나를 스스로 좀먹게 하는 것들이었다.
난 결과를 얻기 위해 불안감을 이용했었고,
불안감을 일으키게 하는 재료로 아주 훌륭했던 감정들.
앞으로 가기 위해선 나의 동기가 아니라,
불안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무수한 것들로 가득 찼었다.
나 자신을 의지해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못 믿어서 삶을 살아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 갇혀서 옴짝달싹 못 하고 있을 때,
난 겁에 질려서 눈을 질끈 감았다.
대학교 2학년 때 1년 동안 휴학을 한 적 있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압박감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휴학하는 동안 나는 또다시 스펙에 매달렸었다.
프로그래밍 학원에 다녀보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자격증 준비를 하기도 했다.
쉬고 싶다는 생각은 사치라고 생각했으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나를 옥죄어왔다.
'더 해야 돼.' ,'이 정도로 살아남을 수 있을 거 같아?' ,
'아직도 뭔가 해낸 게 없네?'라는 생각은 나의 자존감을 더 낮아지게만 할 뿐이었다.
어느 날 난 집에서 혼자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그저 멍하니 유튜브를 보며 집 앞 편의점에서 사 온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그 순간 난 나 자신에게 한심함과 미안함에 눈물을 흘리며 한참 동안 울었다.
도시락을 다 먹은 후에,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취미로 책에서 인상 깊은 문장들을 쓴 노트와 일기장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부터 운영했던 블로그에다 모든 것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문장, 문단, 내 일기, 감정을 모두 다 키보드로 두드렸다.
학교에서 과제로 낸 파일들까지 모두 긁어모아서 또 다른 기록물을 만들었다.
가지 않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읽었다.
인터넷을 뒤져서 좋은 글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학교 안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유연하고 실용적인 지식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내 자존감, 감정, 이 모든 것들이 사회라는 틀에서
무의식적으로 영향받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독서 토론에도 나가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서 그동안 배워왔던 것들,
경험들을 조합해서 직접 글을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미숙하지만 글을 쓰면서 나의 주관이 잡혀가는 것과 충만함을 느꼈다.
나의 모습과 감정들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면 갈수록 자신을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자책과 불안, 강박은 점점 줄어들고, 나에 대해서 조금씩 좋아졌다.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스펙과 별개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수단을 얻게 되었다.
불안감, 죄책감, 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리고 현재 나를 위한 기록물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 되었다.
난 과거를 생각하길 좋아한다.
일상에 있었던 흔한 일들도 끄집어내 써볼까 한다.
나에 대해 알아갈수록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쓰고, 써나갈 글이 여러분 또한 자신에 대해 더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