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를 주고 받는 소통이전이 언어, 즉 언어의 희화성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애니 '언어의 정원'입니다. 이 작품에서 제 눈에 띄는 것은 페티쉬의 해석입니다. 보통 페티쉬라 함은 상징계의 빈곳을 완전하게 막아주는 그 무엇입니다. 즉 우리 인간이 짓고 있는 문명은 상징계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징계는 완벽하지 않죠. 언제나 불충분합니다. 그 걸 빈 곳이 있다고 표현해 보죠. 그 빈곳을 막을 수 있는 것, 우리가 그것만 얻으면 완벽해 진다고 욕망하는 것, 그게 페티쉬입니다.
그 페티쉬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엄마의 신체 부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누구가에게는 돈이 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신이,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작지만 소중한 그 무엇. 그 부분만 있으면 구멍난 이 세상이 완벽해 질 수 있을 것 같은 것. 그게 페티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통의 페티쉬는 자기 충족적이고 폐쇄성을 가집니다. 즉 그것으로 인해서 세계가 완벽해 지기 때문입니다.
언어의 정원에서 페티쉬는 발입니다. 타카오에게 유키노 선생님이 발은 페티쉬입니다. 고등학생이지만 수제 구두를 만드는 장인을 꿈꾸는 인물이 타카오입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억울한 소문에 피해를 입은 고전문학 선생님이 유키노입니다. 둘은 비오는 날에만 정원에서 만나는 데, 타카오는 유키노 선생에게 신발을 만들어 주기로 약속합니다. 유키노 선생에게 지금 당장 사랑을 말하진 못하지만 그 구두를 만드는 한 고등학생이 아닌 한 사람의 남자로서 당당히 고백을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의 정원에서 페티쉬는 폐쇄된 페티쉬가 아닌 셈입니다. 즉 고등학교의 세계로부터 성숙의 세계로 이끄는 매개체가 되는 셈입니다. 유키노 선생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입은 발을 감쌀 수 있는 구두. 그 구두를 신을 수 있는 매개체가 되며, 관계를 회복하는 매개체가 되니깐요. 가히 언어의 정원에 어울리는 페티쉬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