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팔을 움직여서 무엇을 잡을 수 있을까. 이런 기묘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우리는 우리 의도대로, 우리가 주체가 되서 무엇인가 잡는다고 생각해. 그러나 실제로 연구해 보니 우리가 의식하기 이전에 무언가 잡는 신경회로가 먼저 발화한다는 거야. 그 다음에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 주체적으로 잡았다는 이해를 하게 된다는 거야. 그 이해는 사실은 환상이지. 무엇인가 연속된 자아가 있는 것처럼 하기 위한. 시간을 통해 살아가고 있는 자아란 환상이 있는 것처럼. 그 자아가 전부인 것처럼. 그래야 말이 되니깐.
말이 된다는 건, 주어-서술어가 있는 거야.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잖아. 문장에서 누군가 주체가 있고 그 주체가 이런 저런 일을 하는 것, 이런 저런 상태에 있는 것. 이게 문장구조잖아. 그리고 그 문장 구조는 생각구조이기도 하지. 생각구조는 세상을 해석하는 틀이 되기도 하고. 기묘하게 말야.
그렇게 주체를 상정해 놓으면, 그 주체를 위해 우리는 자기계발이란 기묘한 것을 하지. 달달볶고, 무엇가 되기 위해 쫒고, 무언가 힐링해야 하고 치유해야 하고. 그런 일들을 하잖아. 스펙을 쌓아야 하고 발전해야 하고 그런 것들.
그런 것들을 이젠 그만 좀 하면 어떨까. 그냥 좀 놓아줘도 좋을텐데. 자아라는 게 뇌가 필요해서 만든 도구잖아. 그 도구적 개념을 가지고 실제로 살아가니 참 힘들 잖아. 스토리를 만들어야 하고 서사를 만들어야 하고. 그런 것들. 참 기묘한 춤이야. 실제로는 그것이 아닌 걸 알면서도 그것에 파 묻혀 지낸다는 건 말야.
무언가 되기 위해 애 쓰지 말고
그냥 차나 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