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 관심이 생겨 찾아본 영화 ‘나자리노’. 영화를 보고나서야 영화의 장르 중 하나가 공포라는 사실을 알았는데 이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처음에는 영화의 장르를 공포라 한 이유가 비극적인 결말 때문인가 했었다. 그런데 문득 이것이 ‘초현실주의’와 관련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에는 마술 같은, 한마디로 말해서 ‘초현실적’인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이 영화의 기본 배경이 되는 ‘늑대인간’의 존재도 그렇고 그 과정이 ‘보름이 되는 것’이라는 설정도 상당히 초현실적이다. 지금은 늑대인간은 이미 친숙하고 박쥐인간, 흡혈인간까지도 놀랍지 않게 느껴진다. 따라서 이러한 소재의 영화에도 ‘공포’라는 장르가 붙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가 나오던 1970년대에는 이런 판타지적인 소재가 익숙지 않았다. 아마 이 당시에는 영화에 낯선 소재가 등장했을 때 관객들이 가장 먼저 느꼈던 감정이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당대 정서에 맞춰 영화의 장르는 ‘공포’가 되었다.
사실 이 영화는 지금까지 본 영화 중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영화이다. 그런데 평점을 찾아보면서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놀랐다. 2000년대 이후에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이 영화의 정서에 공감하고 있었다. 어떻게 1970년대 정서로 만들어진 영화에 2000년대 정서를 가진 이들이 공감할 수 있었는지 생각하다가 이것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건 영화의 ‘배경음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르헨티나 영화는 ‘뮤지컬영화’라 불릴 정도로 음악이 자주 등장한대서 <레미제라블>이나 <맘마미아>처럼 주인공들이 노래를 많이 부르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자리노를 보고나서 여기서 말하는 ‘뮤지컬’이 인물이 부르는 노래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영화에는 정말 내내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끊임없이 배경음악이 깔린다. 그런데 이렇게 연속적으로 나오는 배경음악이 몰입을 방해할 수 있을 법한데도 결코 그렇지 않다. 주인공의 감정과 상황에 맞게 가사가 있는 음악과 없는 음악이 번갈아 나오면서 영화를 더욱 고조시킨다.
현재 정서와 맞지 않는 영화에 의해 느껴지는 ‘오글거림‘을 좀 더 덜어준 역할을 한 것도 영화의 배경음악이었다. 주인공인 나자리노가 크리셀다에게 반하는 장면과 그와 크리셀다가 마지막에 함께 죽음을 맞는 장면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배경음악이 깔림으로써 그 장면을 조금이나마 낭만적이라 느낄 수 있었다.
중간에 등장하는 깨알 같은 동화 패러디도 영화의 초현실성을 더해주었다. 뜬금없이 양치기가 나와서 뭔가 했는데 그가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는데도 사람들이 오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 이솝우화를 패러디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 양치기의 등장이 다소 맞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나온 영화의 배경과 마을의 모습이 워낙 환상적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납득이 되었다. 과거 ‘영화에서 내가 만든 세계를 확실히 관객에게 이해시키면 그 안에서 등장하는 어떠한 일도 개연성에 맞는 것으로 느끼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영화를 보고 그것을 몸소 체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