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호국신사를 둘러보고 조금 더 걸어가면 ‘중국군관구사령부 군인·군속·동원학도 위령비’를 볼 수 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곳은 당시 히로시마성 주변에 있었던 중국군관구사령부와 관련된 사람들을 기리는 곳이다.
지금은 관광지로 보이는 히로시마성이지만, 당시 이 일대는 일본군의 중요한 군사시설이 자리한 곳이었다. 중국군관구사령부를 비롯해 여러 군사시설이 있었고, 군인과 군속뿐 아니라 통신 업무에 동원된 학생들도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1945년 8월 6일 원폭이 투하됐을 당시 이곳은 폭심지에서 약 790m 떨어져 있었다. 성 안에 있던 방공작전실은 반지하 구조 덕분에 일부 남았고, 그곳에서 근무하던 여학생들이 가까스로 살아남아 전화로 히로시마의 피해 상황을 외부에 알렸다. 이곳에서 전해진 연락은 원폭 피해를 알린 최초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지금 남아 있는 위령비와 방공작전실 터를 보면 당시 히로시마가 단순한 민간 도시만은 아니었다는 사실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전쟁을 확대하며 군사력을 키우던 일본의 중심 시설이 이곳에 있었고, 그 안에는 군인뿐 아니라 학생들까지 동원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날 희생된 개개인의 삶까지 전쟁의 책임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한편으로는 일본이 당시 어떤 방식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결국 자국의 도시와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돌아왔다는 사실도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
화려하게 복원된 히로시마성에서 시작해 호국신사와 피폭 도리이를 지나 이곳까지 걸어오면, 관광지로만 보았던 히로시마성의 또 다른 모습이 조금씩 보인다. 이곳은 누군가를 감상적으로 추모하기보다, 당시 이 도시가 어떤 시대와 상황 속에 있었는지를 차분하게 확인해 볼 수 있는 장소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