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유지를 위한 '매너'

yunta(56)
Published in
#essay
Words
335
Reading
2 min
Listen
Play
9y

'아무래도 좋은 자리'에서 남자가 여자 앞에 굽실거리고 상석을 양보한다. 원시사회에서는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짐을 들게 했지만, 이 시대에서는 여자에게서 모든 힘든 고역과 걱정을 덜어 주려고 애쓴다. 즉 여자를 일체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다.

... 부르주아 계급 여성은 자신들의 계급적 특권에 집착해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피해 자기네들의 사슬(특권)에 매인다.

...(부르주아의 특권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은, 여성에게 여성해방이 부르주아 사회를 약화시킬 것임을 끈질기게 설명했다. 부르주아 여성은 노동 계급 여성들과 어떠한 연대 의식도 느끼지 않았으며 부르주아 남편의 이득을 자신의 이득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러한 완강한 저항도 역사의 진행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 대혁명 시절 부르주아 계급 여성에 관한 글.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177쪽.

//
'레이디 퍼스트'라고 말하며 여자에게 양보하는 기품 있는 예절은, 실은 여자와 남자는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표시하는 행동이다. 여자를 편안하게 보살피고 여자를 성심껏 우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품위 있는 '예법'을 여자에게 베풀어 주는 대신 모든 사회적, 정치적 권력은 남자가 가진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역시 이와 비슷하다. 상위 계층의 사람이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행위를 보여주면서 자신의 계급과 특권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또한 '레이디 퍼스트'와 마찬가지로 다른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서로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기품’ 있게 과시하는 방법이다.

일반 대중의 소비는 상위 계층과 재벌에게 이익을 선사한다. 대중이 소비하는 거의 대부분의 제품과 서비스는 상위 계층의 사업이다. 상위 계층 역시 소비한다. 하지만 그들의 소비는 고스란히 다시 자신의 이득으로 되돌아온다. 어떤 이들은 이런 시스템에 예속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한다.

버나드 쇼는 "사람들이 사슬에 매여 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길 때에는, 사슬에서 풀어주는 것보다 사슬에 묶어 두는 것이 더욱 쉽다."라고 말했다.

사슬(시스템)을 거부하고 개혁하려는 사람, 사슬(시스템)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자랑스러워하지는 않는 사람, 그리고 이런 사슬(시스템)에 묶여 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들, 이 세상은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의 제 2편 ‘역사’ 부분에서는 여성과 아이가 ‘재산’으로 관리되었던 인류의 긴 역사가 서술되어 있다. 봉건시대의(혹은 현재도) 아이들은 영주나 왕의 권력과 부를 강화시켜주는 재산이다. 그 아이를 출산하는 여성 또한 부를 늘려주는 도구이며 재산이었다.

가임기 여성의 정보를 나타내는 지도가 공분을 일으키는 이유는, 여성과 아이를 재산이나 가축 취급을 했던 봉건시대 상위 계층의 개념이 21세기에 그대로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인포그래픽과 애플리케이션이라는 ‘하이 테크놀로지’로 포장되었지만 그 안에 담긴 생각은 수렵채집 시대보다도 야만적이다.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지성이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