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학교 시스템은 산업혁명 때 만들어졌다. 귀족이 아닌 일반 서민을 생산력이 좋은 노동자로 교육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졌다.
20~30년 후에는 인공지능이 현재 직업의 60% 이상을 대체하게 된다. 현재의 직업교육시스템이 쓸모없어질 것이라는 예측은, 이제 예측이 아닌 사실로 인정받고 있다. 이 시기가 더욱 빨리, 혹은 갑자기 다가올 수도 있다. 현재의 직업인 양성과 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시스템은 이미 그 수명이 끝났다. 그저 관성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온라인 강좌로 전 세계 소위 일류대학의 수업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그 외에 삶에 필요한 대부분의 '지식'은 손가락을 몇 번 클릭하는 것만으로 배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물리적인 실체와 공간을 지닌 '학교'가 더욱 중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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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학생들을 인솔하고 학교 수업을 대체하는 '창의직업교육'에 간 적이 있다.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아 학교에서 만든 행사였다.
창의를 '강요'하는 직업교육이었다. 학생들을 그룹으로 나눠서 다른 그룹보다 더 '창의'적인 발상을 내면 선물을 주는 경쟁을 시킨다. 수수깡과 몇몇 도구를 나눠주고 '창의'적인 공작물을 만들게 하기도 했다. 대기업에 들어가려면 이런 준비를 해야 한다는 내용의 '강의'도 있었다. 행사의 내레이터 모델 같은 말투의 강사는 철저히 매뉴얼대로 진행하고 있었다.
뒤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70~80년대에 이미 개발된 창의교육 수업이 살짝 개량되어 있었다.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성공'이라는 강사의 발언, 그리고 창의를 강요하는 전혀 창의적이지 않은 콘텐츠들. 학생들을 그곳에 데려간 나는 사기꾼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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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내가 다녔던 학교의 시스템은 '방목'이었다. 지금처럼 학점에 목매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다. 수업과 강의를 통해서도 배웠지만, 주로 사람들(교수님, 선후배)과 부대끼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웠다. 내가 스스로 무엇가를 할 수 있는 '틈새'가 있었다.
요즘의 대학은 '철저한 학사관리'를 말하며 빡빡한 틀을 만들고 그 틀속에 학생들을 구겨 넣어야 안심한다. 그래야 자신이 일을 제대로 했으며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착각한다. 오히려 예전의 대학보다 더욱 경직되었다. 이제 학교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다. 그렇다고 창의적인 수업을 한다면서 앞에 언급한 '대기업식 공장제 매뉴얼 창의 강요'로 가면 더욱 끔찍하다.
학교라는 '틀'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남아있을 것이다.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자 양성 학교는 '지식'을 가르쳤다. 하지만 이제 학교는 경험을 경험하는 공간이다. 그 안에 함께 있는 사람들과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주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