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의 주제는 '아부'다.
아래 기사를 먼저 살펴보자
아, 기사를 살펴보기 전에 내가 조용필을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먼저 말해두고 싶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그의 팬이었다.
어쩌면 사랑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조용필 90도 인사 해프닝서 드러난 시대착오적 착각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180430111752925?rcmd=re
조용필 90도 인사, 굴욕이라 비난 말고 그 겸손을 배워라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인사는 반가움의 표시다. 윗사람 아랫사람을 나누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받는 사람 따로 있고 하는 사람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지위와 나이를 떠나서 반가움이 크면 그 마음을 더 크게 표현할 수 있다.
조용필은 이미 칠순이다. 그가 김정은 위원장 부부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아무런 문제될 것이 없었다. 조용필은 김정은 위원장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 내외에게도 똑같이 인사했다. 물론 조용필을 잘 아는 팬들이라면 그가 팬들 앞에서도 그렇게 고개 숙여 인사한다는 걸 알고 있을 게다.
그런데 그것이 ‘굴욕적’이란다. 예의를 다하고 나이와 상관없이 고개를 숙여 겸손을 보인 것이 굴욕적인가.
조용필 측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해명했다. “조용필은 평소에도 그렇게 인사를 한다”며 “특정인을 의식했다거나 특별한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조용필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는 그의 '철학'에 따라 그의 인생을 살 뿐이다.
“조용필은 평소에도 그렇게 인사를 한다”라는 말을 읽고는
더더구나 그를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좀 아쉬울 뿐이다. "대표자"로서의 자세가...
'아부'와 '겸손'
'아부'와 '겸손'은 어떻게 다를까?
그 누가 어떤 하나의 행동을 보고,
이것은 '아부'와 이것은 '겸손' 이렇게 나눌 수 있을까?
당연히 그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본인 자신도 모를 수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는 조용필이 '겸손'을 보여줬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눈에는 '아부'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조용필의 관계자 말이다.
“조용필은 평소에도 그렇게 인사를 한다”
아뿔사, 그는 평생을 '아부'하는 것이 몸에 베어버린 것이다.
팬들에게 아부하던 평소의 습관이 갑자기 나와버린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과 손은 잡고 악수를 하는 그 순간,
"조용필은 더이상 조용필이 아니다."
그는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나의 평소 행동대로 하던 행동을 했는데
왜들 이러느냐? 라고 묻는다면 허무하다.
'대표자'라는 관점을 갖지 못하면 결코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지도자가 되었기 때문에 '대표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대표자'라는 관점을 갖고 행동하다보면 어느새 '지도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조용필은 더이상 조용필이 아니다."라는 말은
조용필이 우리를 대신해서 마치 우리가 악수를 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그 대표성을 의미한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조용필처럼 인사를 했다고 생각해 보자.
아마도 정덕현 칼럼니스트 조차도
더이상 '겸손'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의 대표자인게 너무나도 당연하니까?
남북정상회담의 자리에 서있는 그 누구도 우리의 대표자가 아닌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생각하며 그렇게 지켜보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우기고, 마치 개인의 자격으로 참석한 일개 가수의 행동을 하면 안된다.
우리는 바로 그 지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수치심'을 느꼈던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때 그 자리에서 인사하는 조용필은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조용필이 무대에서 공연을 마치고 객석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90도로 인사하던 절을 하던 그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그때 인사를 받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의 자리에 참가하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다.
나라고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고 싶겠는가
나를 대신에 참석한 것이 바로 조용필이다.
그는 나를 대신해서 참석해 놓고 나를 모욕한 것이다.
물론 그는 나를 대신해 참석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 죄라면 죄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는 시대 착오적이라 말하고 있는데
누가 시대 착오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정치가'가 '지지자'에게 아부하면?
'정치가'가 '지지자'에게 아부하는 순간
그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지도자가 아니다.
지지자라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는가?
지금 문재인 지지를 여론조사에서 클릭하는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는가?
그들은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이며
이명박에게 환호했던 사람들이며
광주의 눈물을 외면했던 사람들이다.
그렇다 모두 같은 사람들이다.
지지자는 약하다, 그들은 모두 우왕좌왕이다.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이, 갈대와도 같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들은 원한다. 자유도 평등도 민주도....
하지만 자유를 평등을 민주를 정말로 주려하면 팽 토라져서 지지를 철회한다.
자신들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
원한다고 말하지만 거짓말이다.
아니 거짓말은 아닌데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렇다. 그들은 무언가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고 함께 공감해 주고
자신들을 이끌어줄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왜 이모양 요꼴일까?
바른미래당은 또 왜 그모양 그꼴일까?
민주당이라고 별반 다르지는 않다.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지지자에게 '아부'하기 때문이다.
'독불장군'이라 말한다.
지지자가 뭐라 하든 지 멋대로 행동하는 자를 지칭한다 하겠다.
그런 사람은 응징해야 한다.
아, 어렵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당연히 그렇기 때문에 정치가 어려운 것이다.
"지지자들을 야단칠 수 있는 정치가가 되어야 한다."
자유한국당 정치가들은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을 야단쳐야 한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태극기를 흔들고
박근혜를 석방하라고 외치는가 정신차려라 하고 혼내줘야 한다.
그것을 못하니 계속 이모양 요꼴로 살다가 결국은 사라져 갈것이다.
바른미래당이 자유한국당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그 당은 도대체 존재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주워담고 있으니 싹수가 노래도 한참 노랗다.
"경제는 보수, 안보는 진보"였으면 그래도 중간은 갔을텐데...
'극중주의'라는 시대 최고의 유머를 주장하는 사람과도 함께 정치를 논하고 있으니...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하는 '아부'
그림을 그린다.
당연히 예술 작품이다.
나의 혼과 열정과 모든 힘을 쏟아부어 작품을 만든다.
안팔린다... 슬프다...
팔리는 작품을 한다.
사줄 사람이 원하는 그림을 그린다.
점점 구매자에게 '아부'하게 된다.
내가 그리는 그림이 '아부'인지 아닌지 아무도 알수는 없다.
말했던 것처럼 본인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많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예술 작품들 중에
이렇게 '아부'하는 것들이 없을 것 같은가?
결코 그렇지 않다.
아주 많은 경우 구매자의 의도에 따라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려주고
만들어주고, 작곡해 주고, 연주해 주고... 그렇게 예술가들은 살아왔다.
물론 그 '아부' 속에서도 어떻게든 자신의 꿈을
열정을 혼을 집어넣어 위대한 작품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예술가의 운명과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독자에게 하는 '아부'
스팀잇에서 글을 쓴다.
우리는 '작가'로 이름지워진 '예술가'다.
"나는 아부하는가?"
독자에게 아부하면 안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것이 '아부'란 말인가?
우리를 '종북주의자'라 비판하던 그분은 확실히 아부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분의 주장이 결코 맞지 않고, 올바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독자에게 '아부'하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부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5%84%EB%B6%80
阿附, Flattery
아첨을 잘하는 사람은 헐뜯거나 비방하는 요령도 잘 터득하고 있는 사람이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알랑거리나 오버하는 행위. 다른 말로는 아첨이라고도 한다. 지나치게 타인의 비위를 맞추며 듣기 좋은 말만 하는 행동, 또는 행위를 아부라고 한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행위를 아부라 한다.
"나의 비위를 맞춰주고 나에게 친절한 사람을 싫어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 역시 안될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아니 본능적으로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무엇인가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 것 역시 아부일 것이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듣기 싫은 말을 하지 않는 것...
스팀잇에 종교나 정치글이 많지 않은 것은
그것이 나의 독자층을 나누어 나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에
스티미언 모두가 스스로 의견을 밝히길 꺼려하기 때문이다.
스팀잇은 쉬운 듯 어렵다.
관계를 맺어가고 소통을 하면서 더욱 어려워진다.
어떤게 과연 맞는 것인지 헷갈릴때가 많다.
하지만 오늘도 결심해 본다.
"아부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