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고 당황했던 적이 있다. "오쟁은 헤테로 시스젠더이에요?" 네?.... 아? 음?? 아니 이게 무슨 테헤란로 식스센스같은 말인가? 눈을 몇 번 꿈뻑거린 후에야 그 외계어를 습득할 수 있었다. 이성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것을 헤테로섹슈얼(Heterosexual), 그리고 타고난 성과 사회적 성이 일치하는 것을 시스젠더(Cisgender)라고 한단다. 한마디로, "너는 여자 좋아하는 남자야?" 라고 묻는 것이었다. '당연한' 질문을 이렇게 어렵게 말하는 것일까. 질문자의 의도는 확실했다. 세상엔 수많은 성별과 성적 지향이 있어. 그렇기에 (혹시라도)너의 당연은 당연히 당연하지 않아!
권력은 이름이 없다. 세계의 '기본값'은 너무 '당연해서' 굳이 이름을 지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수식과 이름은 언제나 소수자에게 주어진다. 대표적으로 '여배우'라는 말은 있지만 '남배우'라는 말은 안쓰인다. 저기, 그때 말했던 그 남대생 너무 멋지지 않아?.. 아니 그 남교사가 말이야.. 어제 봤던 작가는 남류화가로서 대단한 업적을 이뤘지!.. 라고 말하면 대단히 어색하다. 남자가 '세계의 기본값'이기 때문이다. "오쟁은 헤테로 시스젠더이에요?" 라는 질문은 '기본값'에 이름을 붙이는 저항이다. 당연했던 이성애 중심의 기존 권력을 부분화, 맥락화시킨다. 이로써 남자인 내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도 단지 하나의 방식으로 인식되는, 건강한 추락을 하게 된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에서 "자연은 허용하고, 문화는 금지한다." 라는 멋진 문장을 유발한 적이 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들은 사실 문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내가 어릴때 교과서에서 배우고 문화적으로 습득한 '가족'의 이미지를 떠올려본다. 거기에는 다문화가정도 없고 미혼모 가족도 없으며 동성애 부부의 가족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른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라는 기본값을 철저하게 습득한 것이다. '자연스러운 존재'란 말은 틀렸다. 모든 존재는, 존재하기만 한다면 그 자체로 자연이다. 이미 있는 존재를 부정한다면 범인은 자연이 아니라 문화다.
사랑이나 연애는 어떨까? 비독점적 다자연애를 뜻하는 '폴리아모리'의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 모노아모리(유일함을 의미하는 mono와 사랑을 의미하는 amory)들이 많을 것이다. 지금 당장 폴리아모리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증거를,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심지어 나쁘다는 이유를 수백가지 제시할 것이다. "나는 절대로 못해!" 라고 외치면서, 사회에 결코 전염되어서는 안 될 메르스처럼 취급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도 그 사람들 중에 일부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수도 있겠다'라고 애매하게 표현한 것은, 내가 앞으로의 모든 연애와 사랑을 고정불변한 하나의 규칙(정상사랑 이데올로기 : 모노아모리)을 정해서 수행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선언이기도 하다. 나는 '현재' 폴리아모리도 아니고 모노아모리도 아니다. 하지만 살면서 누군가로부터 "헐, 대박.. 걔.. 미친거 아냐? 그게 사귀는 거야?" 라는 뒷담화를 담담하게 들을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다. 내 연애관은 조금 변해가고 있다.
_덧대기
<우리는 폴리아모리한다> 책은, 주제 자체가 접하지 않았던 내용이라 신선하긴 했지만 들뢰즈, 가타리, 스피노자 등등.. 기존에 권위있는 철학자의 개념을 너무 끌어다쓰려는 기획 의도가 책을 전체적으로 노잼으로 만들어버렸다. '언어 없는' 소수자의 존재 방식을 세상이 인정하는 굳건한 개념을 빌려 언어화시키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느끼긴 했다. '그렇게까지 하는' 심정이야 백번 이해가 갔지만..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라는 마음도 든 것은 사실이다. 폴리아모리에 관한 텍스트는 예전에 페북에서 홍승은 씨의 본인 경험담을 담은 글이 굉장히 실감나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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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부부의 연을 맺는 일부일처제를 채택하는 나라이다. 이러한 문화에 대하여, 학자들은 유일함을 의미하는 Mono와 결혼 제도를 의미하는 Gamy를 합성하여 모노가미 Monogamy라고 지칭한다. 폴리지니, 폴리안드리, 집단혼 등이 통용되는 문화를 통틀어 폴리가미 Polygamy라 부른다. 폴리아모리는 여럿을 의미하는 접두사 Poly와 사랑을 의미하는 명사 Amory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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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아모리 커뮤니티에서 컴퍼션은, 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 이외의 사람에게서 연애적이거나 성애적인 관계를 통해 행복을 느낄 때 자신 또한 행복을 느끼는 그 감정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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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문어발은 폴리아모리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문어발은 폴리아모리일 수 있지만, 모든 폴리아모리가 문어발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문어발이란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다수의 상대들을 모두 자신만이 독점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 다자연애자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그저 '여러 사람을 소유하려는 모노아모리'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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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이든 간에, 자연에서 사랑을 느끼는 일이란 그 자체로 기쁜 일이다. 하지만 문명은 그러한 정서를 단 하나의 대상에 대한 것으로 환원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거기에 죄책감이라는 조미료를 투하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모호한 윤리적 감수성을 자극했다. 쉽게 말해 이렇게도 사랑할 수 있고 저렇게도 사랑할 수 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스스로가 어떤 결합 관계를 맺는 게 가장 적절할지에 대한 구성적 상상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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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트르와 보부아르 부부의 유명한 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로맨틱한 생활에 대해 남김없이 솔직하게 말할 것. 둘째, 배우자에게 다가운 새로운 사랑에 대해 제약하지 말 것, 셋째,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