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시30분에 이 나라의 수도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프라도 미술관은 루브르 박물관,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이다. 에스파니아 제국이 수집한 세계적인 보물 같은 예술품 8천 점이 전시되어 있다. 프라도란 초원(草原)이란 뜻이다. 당시는 이 일대가 목장지대로 한적한 외곽지역이었다. 사진을 못 찍게 한다고 해서 카메라는 버스에 두고 내렸다.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에 대한 견해는 사람마다 너무 다르다. 몇 십만원이 들어서라도 좋아하는 콘서트에 가기 위해 며칠씩 줄을 서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런 사람을 전혀 이해 못하는 사람도 있다. 미술관의 외형 건축물만 바라보다 오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림 한 점 한 점을 뜯어 보며 감탄을 자아내는 사람도 있다.
그림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없다면 그게 그렇게 비싼 역사적인 그림인지 알 지 못한다. 블랑카는 몇몇 유명 그림 앞에서 그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화가가 왜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당시의 역사적 지식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엘 그레코(El Greco)와 주세페 데 리베라(Jusepe de Ribera )를 비롯한 수많은 화가들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 특히 고야의 그림이 35%정도로 가장 많고 고야의 그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마야의 부인”이라는 누드화다.
당시 상황으로 보면 누드란 지금의 포르노 이상의 파격적인 것이었다. 옷을 벗은 마야(The Naked Maja)와 옷을 입은 마야(The Clothed Maja) 가 있다. 누드화 화가와 모델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종교재판까지 받았지만 고야는 모진 심문에도 끝까지 모델의 신상를 밝히지 않고 그저 “마야”(스페인 말로 ‘끼 있는 여인’이란 뜻)라고 만 말했다고 한다.
어쨌든 엄격한 카톨릭 국가였던 스페인에서 ‘옷을 벗은 마하’는 종교재판에서 외설로 간주되어 어두운 창고에서 100년 동안 잠자다 세상에 나오게 되었지만 아직까지 그 누드의 여인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런 연유로 이 그림은 더욱 유명해져 프라도를 찾는 여행객의 절반이상은 이 그림을 보러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