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gomul님의 이 글에 대한 call and response 입니다. 다음 response는 룸구님이 해주실 듯하네요. 3부작 중 2부작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집단지성!
직장생활은 누구에게나 ()같은 것이 아닐 수 없다. () 안에 뭐가 들어갈지는 각자의 마음 사정에 달려 있겠지만 저기 가장 적합한 단어가 무엇일지에 관한 의견은 대체로 대동소이할 것으로 여겨진다. ㅎㅎ
그 () 때문에 대부분 매일매일 퇴사를 결심하게 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속담은 이럴 때 참 유용하다. 직장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간에, 직장은 기본적으로 밥줄이다. 그건 심리학으로 밥 먹고 살아가는 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밥줄 관리가 성인이 가장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차 과제이며 관리 소홀로 인한 어떤 벌도 스스로가 달게 받아야 한다. 처자식이 딸려 있으면 밥줄의 중요성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마음으로는 셔터맨을 꿈꾸지만 외벌이인 현실과 막중한 책임감을 결혼 이후 공기처럼 느끼며 살고 있다. 너무 자연스러워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 하다가 ()같은 직장을 때려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외벌이 현실과 책임감이 나의 멘탈을 부여잡을 수 있게 한다. 어떤 심리학적 이론이나 지식도 이것보다 직장 생활을 버티게 해주진 않는다. 토끼의 탈을 쓴 호랭이 같은 마누라 얼굴과 "아빠 맬!"을 외치며 매일 저녁마다 말타기하자는 딸의 얼굴을 떠올리며 버티는 것이다.
퇴사 생각은 매일 하는 것이라지만 쥐꼬리만큼 올라간 연봉을 빌미로 30%는 늘어난 업무 실적 압박을 가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생색도 그런 생색이. 누가 보면 연봉 10% 인상한 줄 알겠다. 다른 직장도 대체로 비슷할 것 같은데, 이 직장은 연봉협상이 아니라 통보다. 직장의 암묵적인 연봉 인상폭이 있는데 5%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물가인상율을 고려하면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는 수준이다. 그것도 처음에는 못 올려주겠다고 유선통보했다가 마지못해(표정에 뚜렷하게 적혀 있었다) 관계자가 내려와 쥐꼬리만큼 올려주며 30% 실적 압박을 해올 때부터 이미 내 마음은 이 직장을 떠나 있었던 것 같다. 복지도 ()같은데 연봉까지 ()같은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엑소더스. 그렇게 사직서를 던질 기회를 보았다.
하지만 구인게시판을 보니 더 ()같아 보이는 공고들 천지다. 3월에는 그나마 아주 조금 괜찮은 자리들도 나올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3월에도 전멸이다. 특히나 상담으로 전향하려던 나의 이상적 계획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사람을 노예 취급할 것 같은 곳들만 공고가 올라온다. 급여는 내규를 따른다고 적혀 있는데 안 봐도 급여 숫자가 눈에 보이는 것만 같은 그런 곳들. 날마다 구인게시판을 들락거려 보지만 요즘에는 정신과 진단에서도 AI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22세기적인 정보들만 얻어 나온다. 왠지 미답의 영역을 용기 있게 탐험해 나가는 프론티어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던 중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지금보다 조금 더 좋아 보이는 자리가 나서 이력서를 냈고 그 날 바로 연락이 와서 그 다음 주에 면접을 봤다. 공고를 거의 반 년 가까이 지켜보며 '더 다녀 보자'와 '때려치자' 사이의 무수한 갈등을 경험했다. 아니 때려치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화되었고, 중요한 것은 그 시점을 정하는 것이었는데 드디어 그 기회가 왔고 기회를 잡아서 내가 정한 마지노선을 지켜가며 협상에 성공했다.
이번 직장 들어올 때도 연봉협상을 하긴 했으나 사실 회사가 제시하는 연봉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었고 그것을 수용할지 말지의 문제였다. 다니거나 말거나지 연봉의 조파(ZOPA: Zone of Possible Agreement) 같은 건 없었다. 조파라니 왠지 욕같아서 맘에 드는 단어다. ㅎ 아무튼 집과 회사가 도보 포함 30분밖에 되지 않는 사실이 너무 매력적이고 로딩이 그닥 많아 보이지 않아서(물론 나만의 착각이었다) 내게 불리한 연봉 조건이었으나 받아들였다.(물론 협상 당시에는 불리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돌아보니 미진함이 남았던 거지.)
첫 직장 연봉이 상당히 중요한데, 심리치료 한 번 해보겠다고 트레이닝 3년차 때보다 연봉을 낮춰 갔던 게 어찌 보면 화근이었다. 떨어진 연봉은 이직 시 걸림돌이 됐다. 불리한 연봉 조건을 왠지 감수해야 할 것 같은 심적인 걸림돌로 작용했다.
잠깐 얘기를 돌려서, 첫 직장 연봉이 얼마인지는 정말로 중요하다. 의사, 변호사처럼 전문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돼 있는 직군이 아니고서야 사회에서 전문성을 알아줄 것이라 기대하면 안 된다. 의사가 돈까스 튀기는 사람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는가? 나한테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직군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 직군의 사회적 가치는 대개 연봉으로 판가름난다고 보는 쪽에 가깝다. 연봉으로 그 일의 가치를 가늠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사회에서는 연봉으로 그 일의 가치를 가늠한다는 생각이 모순일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엔 그렇다. 하나마나한 훈수를 두자면, 아직 연봉협상을 안 해본 신규 임상심리전문가나 정신건강임상심리사들은 이 점을 꼭 마음에 새겨놓고 첫 직장 연봉 협상에 임해야 한다. 내가 정한 연봉 마지노선을 허물어뜨릴 바에야 그 직장 안 가는 게 낫다. 스스로 자기 전문성의 사회적 가치를 높여 세워도 모자를 판인데 제 살 깎기 시작하면 사회에서는 당신을 아주 맘껏 노예로 대할 것이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어떤 직장이 똥인지 된장인지는 먹어 봐야 안다. 인터넷이든 다른 사람 얘기든 믿을 것이 못 된다. 들어가서 직접 겪어 봐야만 아는 () 같은 것들이 많고 그런 것들이 대개 퇴사의 명시적 이유가 될 수 있다. 그 명시적 이유는 대개 일적인 것이거나 사람(특히 상사, 그 다음에 동료)이다.
직장일은 늘 많게 느껴지는 게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이 직장 일 많은 건 뭐 그럴 수 있다 쳐도 가족경영으로 인한 폐해가 정말 꼴 사나웠다. 즉, 이 직장의 문제는 사람에 있었다. 가족 누구누구가 회사의 돈줄을 쥔 부서의 장인데 인사나 경영이라고는 배워본 적이 당연히 없을 것이고, 전문성에 대한 존중 노력도 찾아보기가 어려워 심리학자건 전문의건 간에 가릴 것 없이 하대하는 데 능숙했다.
이 기관에 오는 전문의들은 대개 레지던트 4년차를 마치고 이제 갓 전문의 자격시험을 통과한 신규 인력뿐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 기관이 처우가 ()같기로 소문이 났기 때문일 것인데, 입사한 후에도 1년 정도가 아마 평균 재직기간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람이 잘 갈린다. 내가 있었던 비교적 짧은 기간에도 제발로 나간 전문의가 세 명이다. 어떤 환자분이 여긴 왜 이렇게 사람이 잘 바뀌냐고 분노를 터뜨리기도 했다. 전문의도 이런데 심리학자에 대한 처우는 말할 것도 없다. 겉으로야 젠틀하고 매너 좋지만 돈과 관련한 부분에서는 본색이 드러난다. 심리학자고 나발이고 언제든 갈아치우면 그만인 부속품일 뿐이라는 대우를 한다.
일례로, 심리학적 평가를 위한 도구를 한 번 구입해 놓으면 그 이후에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벌이들이는 수익에 비해 매우(!!!) 미미하다. 그런데 그 추가 비용 몇푼 내는 것이 아까워서 이래저래 궁색한 이유를 들이댄다. 그러면서 뻔뻔하게 자기 책임을 내게 전가하는 것은 덤이다. 치사하고 더럽지만 돈줄을 쥔 사람의 말이니 싫은 내색 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나이스하게 처신해야 한다. 어디 부속품 따위가 자기 목소리를 내겠는가. 사회생활이란 그런 것이고 내 목구멍은 포도청이다. 까도 까도 또 깔 게 나오는 게 직장생활의 ()같음이니 이쯤에서 마감한다. 내 돈줄을 쥔 직장 갑이 아닌 한 인간으로 놓고 보면 뭐 나쁘지 않고 배울 점도 많은 사람들이다. ()같은 가족경영이지만 의원에서 지역 최대 규모의 병원으로 성장하였으니 그들의 경영 철학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존중은 하지만 난 나오겠다.
아무튼 자기 전문성의 가치를 잘 디펜스하며 연봉협상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고 탈출 성공했으나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새 직장에는 또 어떤 ()같음이 도사리고 있을지 전혀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들어가서 발 담궈봐야만 알 수 있는 ()같음이기 때문이다. 대개 그 ()같음은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일 때문이거나 사람 때문인데, 사람 때문인 것보다 일 때문인 게 훨씬 버티기 수월하니 어차피 ()같을 수밖에 없다면 제발 일 때문에 ()같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난 천주교 신자니 성모마리아님께 기도하고 하느님께도 기도한다. 남들 노는 빨간 날(특히 대체 공휴일)도 연차에 포함시키는 그런 합법을 내세운 ()같은 꼼수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그렇다 연차가 마이너스라 돈 토해내고 가라 할까봐 지금 기분 상했다.
새직장 연봉협상은 비교적 잘 됐으나 1년 계약직 후 정규직 전환이라는 하나마나한 ()같은 말을 들었고 알겠다고 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간에 돈을 통해 내 전문성 인정해 주는 데가 최고다. 새직장에서 1년 후 설령 계약해지 된다 하더라도 이번에 연봉 높였으니 다음 이직에서 더 높게 부르고 그게 협상되는 곳 찾아 가면 그만이다. 다만 자영업자로서 심리학 전공을 살려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면서 나이 많다고 문전박대 당하는 일만큼은 피하려 애써야 하겠다. 100세까지 일해서 돈 벌 수 있는 삶이라면 그게 얼마가 됐든 간에 참 행복할 것 같다.
고물님이 글 서두에 사용한 이 사진 참 좋다. 도비는 자유예요.
덧. 신분 노출을 피하기 위해 세부 정보를 fact와 다르게 꾸민 지점들이 있습니다. 가볍게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