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이 최고의 무기'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오늘은, 약하다는 것을 내세워 무기로 휘두르는 것에 대한 생각들을 글로 써보려고 한다.
내가 예전에 그랬기도 했고, 그걸 자랑삼아 휘두르며 주변인들의 불편을 사기도 했기 때문이다.
매일 한탄만 내뱉으며 어두운 공기를 조장하는 자에게 어떠한 긍정 에너지가 머물겠는가.
나를 떠난 이들도 머무는 이들도 많다. 지금이 항상 중요하다. 지금은 그러지 않지만, 과거의 내 과오를 한가한 주말을 빌어 다시금 생각해보고,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덧붙여,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약한' 사람이란, 체격이 왜소하거나 선천적인 질병으로 인해 약한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을 이용하여 주변인들을 조종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필요한만큼의 도움을 받는 상태라면 그것은 자신의 약함을 내세운다고하기보단, 치료를 받아 더 나은 상태가 되기 위한 발걸음일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나약한 인간은 누구일까? 쉬우면서도 간단한 질문이다. 바로 '아기' 이다. 아기는 자신이 울면 부모가 돌봐주고 걱정해준다. 한 마디로 '관심'을 받을 수 있다. 인간은 그렇게 부모의 관심을 받으면서 자란다. 그러다,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한다. 그렇지만 이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난 유아기적인 이기주의가 이 사회에 팽배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극복해나가려고 노력하는 행동이 진정 어른이 되는 길이고 사회를 향한 발걸음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약한 사람' 은 약하다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도구임을 인지하고 그것을 무기로 내세우는 사람을 뜻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그들은 지극히 '관심' 을 받고 싶어한다. '관심' 을 받지 못하면 복수심을 품거나 더 아픈 척 연기를 한다.
나는 내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마치 고인물 같았다. 상처는 썩어가고 내가 아파하는 지조차 분간이 안됐다. 그러다, 친구들에게 내 과거의 아픔을 보여줬다. '자, 여기 상처있어. 많이 아파보이지?' 그러자 그들은 하나같이 날 걱정해주며 위로하고 감싸안아주었다. 그것이 좋았다. 내가 관심받는다는 느낌. 내 아픔이 단순히 내 아픔에서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고 그 순간의 관심들은 변질된 따듯함으로까지 느끼게 되었다.
그러한 결과, 나는 내가 불리해지거나 뭔가를 스스로 해내지 못해 자랑하고 싶을 때 내 아픔을 꺼냈다.
'나, 그런 말 싫어해. 하지마. 예전에 이런 일들이 있었단 말이야.'
언뜻보면, 그냥 의사표현으로도 볼 수 있는 말이지만 오랫동안 저 말들을 해왔던 과거의 나를 성찰해 본 결과, 저 말의 뜻은 이것이었다.
'아, 나 니가 하는 그런 말 너무 듣기 싫어. 내 단점을 너에게서 보는 것 같거든. 그리고 나 그것 때문에 엄청 아팠어. 그러니까 더 이상 그런 말로 날 건들지마.'
아주아주 복잡한 마음을 저 말 한 마디로 끝낼 수 있었다. 아주 값싼 소통이었다.
저 말 뜻을 이해해보자면, 나는 내 정신적인 나약함을 무기로 상대방의 자유의지를 억압하며 억누르려했던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물론 상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자신이 듣기 싫어하는 행동이나 말들의 표현을 자제해달라는 부탁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그것이 아니었다. 내가 관찰했던 이들도 그런 의미로 저런 말들을 내뱉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내가 했던 행동들은, 약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자신의 열등감을 아주 좋지 않게 승화시킨 케이스이다. 그러한 과거나, 아픔들을 극복하려는 행동들은 하지 않고 그저 내가 아프니 건들지 말라는 아주 값싼 방법을 택했다. 내가 그것을 지금은 좋지 않게 보나, 과거의 그 행동들은 꽤나 내 입장에서는 '선' 이었고 긍정적인 결과도 가져왔다. 그 실패를 바탕으로 지금의 내가 존재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아픔' 밖에 자랑할 것이 없고 '자랑' 이 없이는 자신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열등감 가득한 자신으로서는 세상을 살아가기에 너무 힘이 들고 우울하다. 다른 사람의 관심이 없이는 무기력한 삶을 지속해야하고 자신의 아픔이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 순간들이 올 때면 소외된다는 느낌도 거둘 수가 없다. 약하다는 것이 무기가 될 때는, 자신이 불행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나보다 더 행복한 남을 볼 때 발현되는 열등감을 숨기지 못하고 긍정적인 행동 밖의 행동을 하는 순간이다. 어찌보면 비참하다. 그렇지만, 자신이 겪어야할 문제이고 책임인 것을.
나는 그 행동들이 비겁하다고 느껴졌다. 내가 무기를 휘두르자, 상대방들은 처음에는 관심을 주었고 나중에는 주는 척을 했다. 그것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또 다른 이들은 나에게 더 큰 공감을 하며 자신이 주지 않아도 될 것을 주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비겁한 사람으로 확인하게 만들었다. 우리 모두는 남이 없이는 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로서기를 해야한다. 나는 비겁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원하는 내 삶을, 나아진 내 삶을 살기 위해 나에게 베풀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기로 했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쌓여서 나를 변화시키고 내 주변인들의 입가에 미소를 띄게 만들었다.
나는 약함을 자랑거리로 떠벌리고 다닐 때, 얼마나 속상했냐며 나에게 공감을 해주던 그 친구들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아마 별로 좋지 않은 표정이었을 것이다. 비로소 내가 그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 무기를 꺼내지 않았을 때 그들은 내 옆에서 환하게 웃었다.
잊지 말자, 무기를 드는 순간 친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