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중독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경고의 대상이었나 봅니다. 즉 현대 뇌과학이 인간 뇌는 권력에 중독되기 쉬우며 권력에 중독되는 경우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자기도취에 빠져버린다고 합니다. 권력은 가장 강력한 최음제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여기 신화에 또 다른 권력중독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크로노스였습니다. 그 자체가 자기의 권력을 지키고자 아이를 잡아먹었던 무시무시한 우라노스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오릅니다. 그러나 크로노스도 아버지 우라노스의 잘못을 반복합니다. 역시 자식들을 잡아 먹었던 거죠. 고야가 그린 위에 그림은 그 끔직함을 잘 드러냅니다. 크라노스의 얼굴 표정에서 그가 어떤 광기에 취해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기도 어쩔 수 없는 파괴본능에 휩쓸려 있던 것입니다. 그 표정은 슬프기까지 합니다. 그 스스로도 자신이 광기에 취해있음을 안 게 아닐까요. 권력에 중독된 자의 슬픈 눈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생명력을 지닌 어머니를 질투하여 깨물은 다음의 눈 같습니다. 어린아이는 자신에게 젖을 제때 안 주는 어머니를 원망합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공격합니다. 이내 아이는 자신이 소중한 어머니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압니다. 이때 어린 아이는 우울 모드에 들어갑니다. 자신의 공격성이 소중한 것을 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런 어린 아이의 마음은 성인이 된 우리에게 여전히 있습니다.
다시 신화로 돌아와서, 그런 그를 제하고 마침내 신들의 왕에 오른 이는 제우스입니다. 제우스는 크로노스에게 먹은 걸 토하게 하는 약을 먹입니다. 그리고 그를 제하고 자신이 왕이 됩니다. 왕이된 제우스는 자신의 권력을 제한하고 남매들과 함께 통치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크로노스가 담당하던 농경은 데미테론이 담당하게 됩니다.
고대인들은 주술적 사고 속에 살았습니다. 권력자가 자기 힘을 다하면 그 나라에 불행이 닥친다고 생각했습니다. 권력자는 한 인간이 아니라 나라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은 자신의 생명이 다 했다고 생각하면 그 자리를 후대에게 물려주고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왕의 몸은 나눠져 땅에 뿌려집니다. 감염주술입니다. 왕의 생명력이 담긴 땅은 다시 생명력을 얻기 때문입니다.
힘이 많은 사람은 그 생명력을 나눠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자기 자신이 자신을 잡아 먹는 경고를 신화에서는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명리학적으로 말해서 비겁이 지나치게 많거나 지나치게 적은 사람은 권력에 취하거나 경쟁심이 지나칠 수 있습니다. 자기 힘이 밖으로 흘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는 자기 내면이 너무 빈곤하여 힘으로 채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농경의 신 크로노스는 농사가 자연의 순환 속에 들어 있는지 잊었나 봅니다. 자연은 순환합니다. 그 순환 속에는 높이 오른 것은 낮아지고 낮아진 것은 오르는 순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루마니아 출신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인간이란 이 원형회귀에 순응할 때 실재와 의미를 획득한다고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참 모습을 볼 때 나아질 것이다. - 안톤 체호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