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는 게 참 많습니다. 지식은 이미 거대해졌는데 몸은 그걸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를 상하불교라고 들었습니다. 몸이 기준이 되지 않고 지식이 기준이 되는 순간, 위 아래 소통이 끊어집니다. 때문에 병이 납니다. 편벽되기 때문이라합니다. 지식은 권력일 수 있고 우월함을 줄 수 있지만 그게 곧 삶은 아닙니다.
생명이니 평화니 또는 수목적 지식이 아닌 리좀적 지식이니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몸이 빠지면 그런 말들은 공허한 지식이 되고 말 뿐입니다. 당장 아는 게 힘이고 그게 도파민을 줄지도 모르지만 몸은 중독되어 버립니다.
몸은 이미 공허한데 그런 지식들이 유통되는 걸 봅니다. 몸으로 느끼는 게 아니라 지식으로 느끼는 문화를 봅니다. 몸의 감각은 마비되었거나 취해 있는데 말입니다.
두뇌의 재주넘기에 탁월한 사람은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지식은 편벽되나 지혜는 공정합니다. 자신이 모르는 바를 몸으로 신득하는 것. 그래서 공부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리좀적 삶은 단지 지식으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건 몸이 이미 그렇게 되어 있을 때, 드러나는 어법일 뿐입니다. 생명이 가득한 삶은 지식으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