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은 기억 소환기]
한때 내 일부였던 것들, 현재는 그것의 연장선이지만 그것은 마치 오래된 친구의 기억처럼 타자화되어 있다.
잊고 살던 게 많았다.
기억이란 베란다 옷장에 쌓여 있는 다 헤진 옷이다. 그중에는 재활용 분리수거함에 들어간 옷들도 적지 않다. 그런 버려진 옷들은 소환술을 펼치기에 너무 늦었다.
내 모든 의식의 흐름은 현실을 소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출근해서 일하고, 성장하는 아이들을 대견하게 바라보고, 영화도 보고, 바둑TV에서 중국팀에게 지는 한국팀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쏘아보는 것들이 나에게 주어진 생활이었다. 그런 생활이라고 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다만 무거워 보이는 텅 빈 여행 가방을 무심코 힘껏 들어 올리는 경험처럼 가벼운 공허함이 가끔 찾아든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소신의 옷장에는 아직 12벌의 옷이 남아있사옵니다.
스팀잇은 기억 소환기이다.
다른 분들의 밀도 있는 글들을 읽다 보면 옛일들이 하나둘 스친다. 비슷한 경험으로 기억 일부를 건드리거나, 때로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뇌세포를 재조립하여 다른 기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캔맥주를 먹다가 느닷없이 오로라가 떠오르는 기분적 기분 같은 거. 포스팅을 위해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내 기억회로는 특히 팽팽 돌아간다. 내가 언제 이렇게 쓰고자 애쓴 적 있었나?
최소한 한 번은 있었다. 그것은 언제나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다. 신문사 공모전에 시를 응모했던 적이 있었다. 결과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화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었다. 그 당시 시집을 내고 싶었으나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과거를 스캔하다 보니 무엇이든 써보고 싶었던 때가 그때만은 아니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조개껍데기를 찾던 아이가 우연히 소담스러운 소라 껍데기를 주웠다. 아이는 열심히 찾았고 곧이어 소라 껍데기 무더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이 이와 비슷한 듯하다. 기억의 옷장을 뒤적거리다 보면 한 가지 키워드에 몰려들어 있는 기억의 단편들을 찾을 수 있다.
초등학교 3, 4학년 때쯤 백일장이었다. 원고지가 없었던 나는 반 친구 두 명에게 동시를 한 편씩 써 주었다. 그중 한 편이 당선되었고 그 친구는 상을 받았다. 내가 그 친구를 고깝게 생각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내 출세작이었다. 6학년 때 전학 간 학교에서는 내가 쓴 동시가 액자에 담겨 교실에 걸리는 영광을 맛보았다. 그때 쓴 동시의 제목은 "잘 어울려요"였다.
스물아홉, 작은 자취방이 내 유일한 안식처였던 시절, 곧 다가올 서른이 인생의 끝인 줄 알았다. 그때 나는 퇴근해서 미친 듯이 시를 썼다. 단어나 문장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머리카락을 부여잡기도 하고 맞은편 벽을 한참 동안 멍하니 쳐다보기도 했다. 진작 버렸어야 했는데, 그때 쓰던 습작 노트를 여지껏 가지고 있다. 건전한 정신으로 생존하려면 이런 낯 간지러운 것들은 버려야 한다.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는, 20대 중반쯤 썼던 습작 노트들도 기억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사단 민심처에서 근무하던 군 시절, 약간 얼빵한 정훈장교(나보다 나이가 한 살 어렸다) 때문에 그의 일을 도맡아서 했다. 매주 한 번 장병들에게 배포하는 사단 신문의 칼럼을 쓰는 일이었다. 국방일보에 투고했던 글이 덜컥 실리는 바람에 2박 3일 휴가를 받은 적도 있다. 평소 내 생각과는 완전 다른 글들이었지만 편한 군 생활을 위해 기꺼이 임시 전향했었다.
고3 수학여행 중 3행시 대회에서 상을 탄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나의 커리어이다.
소환술을 부려 불러낸 이 기억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치기 어리거나 아이들 장난 같던 이 기억들이 왜 지금에야 하나씩 생각나는 걸까. 이유야 어떻든 스팀잇은 이런 행복했던 기억들을 건져내 주었다. 더불어 나에게도 한때, 내 마음 하나 정도는 달굴 수 있는 뜨거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였다. 포스팅의 압박이 점점 달콤해지고 생각의 실타래를 푸는 것이 즐거워지는 이유가 이것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적은 양이지만 꾸준히 적립되고 있는 스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