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부리] 역사를 보는 중구난방식 나의 관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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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teemit.com/busy/@sadmt/6bdbbs (1부)

사실 고대사나 고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문제는 골치 아프다. 유물이 나왔으니 '나왔네'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유물이 나왔다. 왜냐하면 유물이 나왔기 때문이다.(김작가님 표현 허락없이 도용해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면 설도 썰도 안된다. 유물을 건진 사람은, 그 사람이 학자라면 타당한 설을 제기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왠만해서는 기존 주류 사학의 흐름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주류 사학의 흐름을 방해한다면… 묻어 놓는다. 많은 오파츠들이 그렇게 묻혔다. 그리고 많은 유물들이 알지 못하는 선조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지만 역사 교과서는 외면하고 있다.

현생인류가 표현이라는 기법을 발명했는데 진화의 흔적이 없다면 이상하다. 진화라는 것이 썩기 힘든 부분만 남아 있는 것을(화석) 보고 변화를 추적하는 일이라 한계가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뇌 모양은 그대로이고 뇌 신경이 복잡해지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3,4만 년 전 현생인류의 '표현'이 시작되었으니 뇌의 진화를 그 때 쯤으로 보는 것이다. 설들력이 있는 해석이지만 증거는 없다. 나는 연구자가 아니므로, 저 고대인들이 말도 하고 표현도 한다는 것을 지지 할 뿐이다.

파푸아뉴기니는 수 천의 부족만큼 수 천의 말이 있었다. 현재는 급속도로 사멸하고 있다. 전 세계 모든 현생인류는 자기만의 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두 문자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현생인류의 역사가 문자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 일은 오래전 일이 아니었고 전방위적인 확산을 가져왔던 것도 아니었다.

한나라에 쫓긴 흉노족이 실크로드 근처를 200년 간 방황하다 훈족이란 이름으로 유럽에 뿅하고 나타났다. 그들은 교황으로부터 조공을 받기도 했고 게르만족의 대이동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유럽사를 연구하는 유럽인들은 유럽사에서 훈족의 이름을 지우고 싶어 한다.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에 완전히 지우기에는 무리가 있다. 결국 훈족이 끼친 영향을 축소시키려는 경향을 보인다.

흉노족이나 훈족에게는 문자가 없었다. 칭기스칸의 몽골도 처음에는 문자가 없었다. 문자가 없는 아마존의 여러 부족들이나 호주 원주민들은 현대문명으로 이해하기 힘든 정신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아직도 문명사의 정품인증을 못 받고 있다. 사하라 이남의 많은 아프리카 부족들도 마찬가지이다.

인류 중 문자를 가진 일부가 지구를 촘촘히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부지불식간에 현생인류의 역사를 문자의 역사로 오해할 수 있다. 현생인류는 문자를 발명하기 전에도 오랫동안 자신의 문명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문자 발명 이 후에도 여러 지역에서, 문자는 없지만 독특한 문명을 만들고 영위해 왔다. 요즘 고고학이나 역사학 연구에 다양한 첨단 기법들이 적용되는 것 같은데, 소외되어 왔지만 정작 인류의 일부였던 역사들을 공평하게 재조명하는 기회가 찾아왔으면 한다.

석기시대하면 돌도끼, 돌칼 이런 것이 생각난다. 신석기시대라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빗살무늬토기 정도? 우리가 갖고 있는 신석기시대라는 이미지는 최소한의 나뭇잎 웨어러블을 한 채 빗살무늬토기를 만드는 정도이다.

문명이 가장 먼저 발달한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4천년 경에 마감하고 청동기시대로 넘어간다고 배웠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견은 차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석기의 이미지를 허물어뜨려 왔다. 수렵, 채집이나 하면서 살았을 것이라 추측한 그 시대가 사실은 깜짝 놀랄 정도의 문명을 건설해 왔던 것이다.

예를 들면 제리코 유적이 있다. 기원전 9천 년 경의 유적인데 놀랍게도 도시의 형태를 띄고 있다. 돌로 만든 성벽도 출토되었다. 성서에 나오는 여리고다. 성서고고학자들이야 환호성을 질렀겠지만 안타깝게도 여호수아가 무너뜨린 성벽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작과 관련된 흔적도 출토되었다.

최근 발굴 중인 터키의 괴베클리테페는 더욱 놀랍다. 기원전 1만 년 경 건설된 거석유적인데 스스로 유적을 묻어 버렸다. 이 유적 바로 밑에 비슷한 유적이 이미 건설되었었고 그것 또한 묻어 버렸다. 묻혀 있는 유적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석기시대를 재 규정할 필요가 있다. 석기시대의 의미를 획기적으로 바꾸든지 아니면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부르든지. 현생인류의 고대사가 언젠가는 지금과는 다른 방법으로 분류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종교는 전쟁을 일으킨 적은 있어도 전쟁을 중재해 본 적은 없다. 링컨은 종교의 이름으로 인디언을 학살했다. 미국 독립선언서에 등장하는 창조주는 백인의 창조주였을 뿐이다. 십자군의 아이러니 또한 종교가 가지는 역기능 중 하나이다. 십자군의 역사적 의미를 평가하자면 비잔티움으로 불린 동로마제국의 몰락을 촉진시켰다는 정도. 중세를 장악한 교황권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신의 이름으로 죽임을 당했는지는 말할 것도 없다. 오히려 로마의 다신교 나 이슬람은 솔직하다고 할 수 있다. 전쟁과 죽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예수님과 부처님은 단 한 글자도 남기지 않았다. 그 분들은 글자가 규정하게 되는 의미의 한계를 알고 있었을 지 모른다. 신을 대리하는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경전과 기적의 기록이, 다툼과 전쟁으로 반복되는 역사속에서도 사람들에게 여전히 신뢰를 주고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정말 종교는 권력의 시녀인가…

몇 달 농땡이 쳤으니 다시 성당에 나가야 한다. 나는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20살까지는 가톨릭을 멀리했다. 그러나 대학시절에는 가톨릭학생회에서 동아리 활동을 꽤 열심히 했다. 심지어 회장 출신이다. 그 후 개인적인 암흑의 시기를 지나 다시 성당에 나기기 시작한 것이 불과 몇년 전이다. 나같은 종교인도 있다는 것은 생물의 다양성만큼이나 종교 생태계에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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