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믿지?"
오늘도 수많은 소녀들이 오빠들의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에 넘어갑니다. 그 오빠는 정말 믿을만한 오빠였을까요?
신뢰의 가격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큽니다. 신뢰라는 것은 결국 미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가 지금 시점에서 가장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 뿐입니다. 우리가 다니던 직장은 언젠가 부도가 날 수도 있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우리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깨질 수 있습니다. 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강한 사람이 어느날 심장 마비로 죽을 수도 있으며, 첨단 과학으로 완벽하게 지어진 견고한 건축물이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죠. 그리고 방금 나열한 이 모든 일은 인류사에서 실제로 끊임없이 일어났던 일들이었습니다.
한창 보따리상들이 활동하던 시기, 일본의 도매상들에게서 물건을 떼어다 파는 보따리상들은 도매상 주인들의 태도에 조금 놀라게 됩니다. 많은 물건을 가져간다고 해도 조금도 할인해주지 않았던 거죠. 심지어 공급 수량에 제한을 두기까지 했죠. 실제로 눈 앞에서 큰 돈을 현금으로 가져와서 보여주어도 반응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차별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소량이라도 거래를 트기 시작해서 꾸준히 물건을 가져가기 시작한 보따리상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도매상들이 자신에게 무척 호의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심심치 않게 가격을 할인해주거나 덤으로 주고, 원하는 물량만큼 얼마든지 가져갈 수 있도록 하기 시작한 겁니다.
일본 도매상들이 정말로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바로 신뢰였습니다. 당장의 이익 보다는 긴 시간에 걸쳐 신뢰를 쌓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이죠. 눈 앞의 현금 보다는 지속적인 거래로 쌓인 신뢰가 나중에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그들은 오랜 상업의 역사를 통해 깨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은행에 돈을 입금하는 이유는 은행에 돈이 안전하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은행이 일을 하는 방식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결코 내 돈이 안전할 수가 없습니다. 일부의 돈만을 남겨두고 그 10배 가까운 돈을 대출해주기 때문이죠. 있지도 않은 돈을 대출해주는 셈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 번에 돈을 찾으려 한다면 어느 은행도 그 즉시 모든 돈을 지급할 수 없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은행이 부도가 나야 하며, 실제로 그런 일이 몇 번 있었죠. 물론 지금은 정부가 일정 금액까지 보증을 해줍니다만, 그렇다면 정부는 믿을 수가 있을까요? 전쟁이 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아무도 모르는 거죠. 그럼에도 우리가 은행과 정부를 믿는 것은 우리나라가 그만큼 안전하고 발전된 국가라는 확신이 들만큼 꾸준히 신뢰있게 운영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전쟁 무기의 개발과 외교의 발달로 앞으로도 우리 나라가 안전하다는 확신도 생겨서이기도 하죠. 그런데 알고 보면 이러한 신뢰 역시 그냥 추측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국제 사회 분위기가 어떤지, 우리와 북한,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가 어떤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캄보디아 국민들은 은행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과거 크메르 정권 시절, 은행에 돈을 저금한 사람들을 폴 포트 정부군이 학살했기 때문이죠. 베트남 국민 역시 얼마 전까지 은행 입금율이 낮았습니다. 동화와 달러화 환율 고정으로 은행에 입금하면 손해가 난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었기 때문이죠.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추측 위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무척 놀라게 됩니다. 우리나라가 지진 안전 지대인 이유가 꽤 오랫동안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왔습니다만, 얼마 전 그런 생각마저 깨지게 되었죠. 한반도는 안전할까요?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면 스스로 자멸을 초래하는 것을 그들이 알기 때문에 결코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거라고 우리는 생각 합니다만, 그것은 정말 흔들리지 않는 사실일까요?
삼성전자의 주식이 1년 후에 두 배가 된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 사실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빚을 내서라도 주식을 사면 그만이니까요. 어떤 사업가가 성공한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 사업가는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부자가 될 것입니다. 모두가 그 사람에게 투자하려고 할 테니까요. 자신의 아이가 음악으로 성공할 것이 확실하다면, 빚을 내서라도 모든 돈을 아이에게 투자하겠죠.
안타깝지만 단 하루 뒤의 일도 우리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자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의 말은 절대로 있는 그대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인간은 어떻게든 확실한 미래를 알고자 노력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전세계에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추측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람이 있다고 믿고, 그런 믿을만한 과학적 이론이 있다고 믿습니다. 20세기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위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기존의 우주론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이론이 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죠. 의료 분야에서는 여지껏 우리가 알고 있던 질병 발생 모델이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이론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불안은 이 모든 진실을 가려 버립니다. 불안할수록, 세상에는 흔들리지 않는 진실과 확신, 미래 예측이 있다고 믿습니다. 단지 우리가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라고 간주해 버리죠.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만, 불안한 사람들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확신을 갖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고통스러울 만큼 불안하기 때문이겠죠.
예로부터 말을 잘 하는 사람, 자기 확신이 뚜렷한 사람들이 일도 잘 풀리고 사업도 잘 한다는 말이 있어왔습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단순히 말빨이 좋아서라고 폄하시키긴 합니다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신뢰를 주는 말빨이라는 것은 엄청난 능력 입니다. 자기 확신을 갖는 것 역시 보통 사람들이 가지기 힘든 대단한 능력이죠. 미래를 확신을 갖고 믿거나 사람들에게 그런 강건한 믿음을 주는 것 자체가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규모를 따질 수 없는 엄청난 돈이 세상에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사실 이 돈들 중 거의 대부분이 시장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오히려 점점 더 커질 것이라는 믿음 덕분에 존재할 수 있는 돈이죠. 신뢰가 깨지면 모든 돈들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위에 언급했듯 미래는 끊임없이 변하고 지금 믿는 것은 결코 확신을 갖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모두가 실제 이상으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거대한 금융 시장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 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사실이 개인의 인생에 적용시켜 보면 전혀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앞으로 성공하게 될까요? 그것이 물질적이든, 정신적인 행복이든 상관 없이 모두가 '성공했다' 라고 인정할 만큼, 그리고 스스로도 만족할 만큼의 성공을 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요.
여기에 바로 신뢰의 가치가 숨어 있습니다.
타인에게 신뢰를 주고, 자기 스스로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은 때가 되면 어떤 식으로든 성공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나긴 인생동안 다른 사람에게 계속해서 신뢰를 주는 행동을 하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위에 언급했듯, 이 세상 모든 것은 예측 불가능하며 믿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신뢰할 대상을 찾아 헤매고, 신뢰할 것이 있다면 반드시 투자를 합니다. 돈, 시간, 때로는 자신의 인생까지도.
그렇기 때문에 신뢰를 주는 행동 하나하나는 그대로 보이지 않는 자신의 가치가 되어 쌓입니다. 또한 타인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나부터 나를 믿어야만 하죠. 내가 나를 믿어야 남들도 나를 믿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나이가 들수록,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것을 선택하는지, 이것은 내 통제 밖에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 많은 것들이 사실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노력을 해도, 내 자유 의지로 선택을 하려고 해도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 보면 결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음을 돌이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세상이 만만하지 않은 것임과 동시에, 애초에 불가능한 생각이었던 것에 불과 합니다. 마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이론이나 생각, 사람이 있다고 믿는 것 만큼이나.
유일하게 자유 의지로 선택 가능한 것은 나를 믿는 것, 그리고 남들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쌓인 신뢰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신뢰가 쌓인 만큼 그 가치는 분명히 보상으로 돌아 옵니다. 신뢰의 가격은 상상 이상으로 비싸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이 잘 안풀리는 사람들 중 신뢰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뢰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간과하기 쉽습니다. 내가 쌓은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타인에게 신뢰있는 행동을 한 순간들을 기억하는 것, 그 뿐입니다. 그런 기억은 나만이 가지고 있는 기억이지만, 사실은 내 몸 어딘가에, 나의 행동 어딘가에 새겨져 있어 그대로 드러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메커니즘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새겨진 신뢰의 흔적을 찾아내어 그것의 가치를 직감적으로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허무 맹랑한 이야기로 들릴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가 확신을 갖고 믿고 있는 이 세상의 수많은 것들이 근본적으로 얼마나 허무 맹랑한 추측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꼭 그런 식으로 매도할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을 해 봅니다.
오히려 개인 입장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믿음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