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는 무기력한 공무원이다. 그러던 그의 삶이 변화되는 계기가 생긴다. 바로 위암 판정을 받게 된 것. 자신이 곧 죽는다는 걸 알게 된 와타나베는 지금까지와 다른 삶을 위해 유흥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와타나베는 클럽에 가서 화류계 여자들과 춤을 추고 그것도 모자라 처음 만난 여자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 등 그 전에 해본 적 없는 일탈을 일삼는다. 회사 생활까지 제쳐두고 유흥을 즐기던 그는 우연히 길에서 회사 여직원을 만난다.
그 때부터 와타나베가 밤을 보내는 방법이 유흥에서 여직원을 만나는 걸로 바뀐다. 무기력한 와타나베의 삶과 달리 언제나 밝고 명랑한 여직원을 만나며 와타나베는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그의 인생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제목은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제목이 뜻하는 것이 어쩔 수 없이 ‘산다’인지 내가 살고 싶어서 ‘산다’인지는 듣는 이들에 따라 다르게 느낄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보면 제목의 의미가 이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보기만 해도 불쌍해지는 무기력한 삶을 사는 것이 얼굴 표정에까지 드러나는 사람이다. 그러던 그가 어떤 계기로(그것이 위암인지 밝은 여직원인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삶에 대한 의욕이 생겨 인생을 사는 자세를 바꾸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유흥이라는 잘못된 길을 택하는 듯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는 바람직한 길을 걸어간다. ‘산다’였던 그의 인생이 ‘살다’로 바뀐 것이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인물들의 구도이다. 공원 건설을 거절당한 와타나베가 직원들 하나하나에게 인사하는 장면에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곳을 보며 인사를 함은 물론 인사를 하는데, 와타나베보다 직원이 더 앞에 있다. 이것은 현재 직원의 위치가 ‘갑’, 와타나베의 위치가 ‘을’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기법은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구로사와 감독의 뜻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인 것이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가장 많은 여운을 남기고 또 이 영화를 본 가장 큰 계기가 된 것은 바로 영화 속에서 와타나베가 부른 노래였다. ‘사랑을 해요, 젊은 아가씨’라는 가사와 슬픈 분위기가 인상 깊었다. 지금까지 영화 속 인물들이 노래를 부르는 많은 장면들을 접했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도 이 영화 속 노래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평소에 영화는 무조건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재미와 감동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무조건 직접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아 있는 여운과 감동을 만드는 영화도 충분히 좋은 영화라는 걸 깨달았다. 흑백화면 속의 와타나베의 모습과 구슬픈 노래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