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디어오늘 칼럼에 지난번 청년공론장에서 발표했던 '꼰대정치'에 대해 다뤘습니다. 제가 좀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발표를 했기에, 이 용어에 대한 부연설명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물론 '꼰대정치'의 개념은 정립하는 중입니다. 칼럼에서는 일단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꼰대정치란 세대간 소통이 불가능한 정치를 의미한다.
정치에 대한 제 나름의 정의를 쓰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존재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반해, 정치는 다른 사람을 대변해야 하는 일이다. 정치란 이런 역설적인 상황을 극복하는 일이고, 그 극복의 수단은 타인과 소통하려는 노력,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이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정치가 가능하다.
한국 정치의 문제가 정치의 본질을 외면했기 때문이란 지적도 했습니다.
한국 정치의 총체적 위기는 정치인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한국 정치인들의 전문성, 학습능력, 눈치, 체력 모두 수준급이나,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좁은 사람들이 다수라는 점이 진짜 문제다. 왜 유모차를 밀거나 휠체어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이리도 힘든가는 정치인 다수에게 이 문제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 자신의 문제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권의 구성이 균질적이어선 안 되고, 이미 구성된 정치집단은 늘 자기 존재를 확장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정치에 다양한 문제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세대' 문제가 도드라지는 이유에 대해서도 써봤습니다.
계층, 지역, 성별 등의 분야도 경계를 뛰어넘어 소통하기가 어렵지만, 한국에선 특히 나이에 따른 위계문화가 세대간 소통을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세대 간 인식차는 커지고, 각자가 바라보는 세계관도 달라진다. 한국의 기성정치인들은 여전히 일자리가 많았고, 한국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투영해 지금의 청년층을 바라보고 있진 않은가. ‘대기업, 공무원에 목매지 말고 인력난이라는 중소기업에 취직해라’는 조언을 건네는 정치인은 자신이 어디에서 세상을 보고있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 80세에 육박한 버니 샌더스가 젊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 이유는 그가 젊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칼럼의 많은 부분을 소개했는데요. 전문은 아래 링크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꼰대정치의 개념은 이것말고도 더 있습니다. 특히 '모든 사안을 좌우파의 시각으로만 세상을 보려는 것',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일은 무조건 감싸줘야 한다는 패거리 문화' 등도 꼰대정치입니다. 이 개념을 좀 더 명확히 정립하는 작업을 해보려 합니다.
다음세대를 위한 정치
'청년정치를 상상하다', 15분 발표를 위해 500킬로를 날아오다
01 - 위계문화와 꼰대정치
02 - 한국일보의 기획기사 '스타트업 젊은 정치'
03 -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소통이 아니라 권력이다
04 - '청년정치를 상상하다' 행사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