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에서는 글을 읽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아마도 새로운 주제로 글을 작성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고 그것에서 떠오르는 착상을 글로 남기는 것이 더 쉬운 글쓰기 방법일 것이다.
최근에 내가 글을 적게 썼다.
글을 쓰는 것이 왠지 모르게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존칭을 쓰게 되면서부터 더욱 사람을 의식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댓글을 쓸 때에는 존칭을 쓰는 것이 맞지만 처음부터 포스트를 존칭으로 쓰려고 하니까 글을 읽는 사라을 의식하게 되고 이러한 과도한 의식이 글을 쓰는 것의 장애로 작용한 듯하다.
그래서 이따금씩은 그냥 존칭을 생략한 글을 쓸 참이다.
최근 스팀잇의 최근 글에서 다음을 읽었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면서 참 내가 별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여태껏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되어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종종 하기도 하나 보다. 과연 다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란 무엇일까?
어렸을 때에는 위대한 인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위인 전기를 읽을 탓이었다.
그러다가 자라가면서 내가 위대하다고 생각했던 인물이 진정 위대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보잘 것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이 세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존경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존경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일단 훌륭한 사람도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지평의 너머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
또한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가 대략 이해되기도 했다.
내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에게 대해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그 가능성을 알고 나서는 나조차도 그런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나도 다른 사람이 상상하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이니까.
어차피 훌륭함이나 악함은 사람의 본질을 건드리는 것은 아니다. 그의 겉 표면으로 나타난 형상을 관찰한 결과일 뿐이다.
물론 여러 사람에게서 교육받은 대로 훌륭한 사람의 좋은 점을 따르려고 노력은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러한 특성이 좋다고 생각해서였지 그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존경해서는 아니었다.
사실 그 사람이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강화행동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좋은 결과를 얻으면 그러한 행동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사회화의 과정에서 숙득하게 된 결과일 뿐 그 행동을 한 사람이 본질적으로 착하거나 훌륭하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교육을 잘 받아서 훌륭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면 그렇게 그를 가르친 사람과, 그러한 배경과 문화 등을 칭찬해야 할지도 모르겠으나 과연 그러한 주변적인 것을 굳이 찾아서 평가할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또한 내가 어떤 좋은 행동을 했는데 누가 나를 칭찬하더라도 참 어색했다. 나는 본질적으로 이런 행동을 할 착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이것이 나한테 장기적으로 편하고 이롭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을 뿐인데도 사람은 나를 칭찬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 누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었다. 그것은 나에게는 불가능했다.
모든 사람이 아니라 심지어 한 사람도 진정 사랑할 수 없었다. 나는 누구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못 되고 단지 내 주변에 있는 이웃에게 친절하게 대할 뿐이었다.
물론 나에게는 이웃에 대한 감정이 있다. 먼저 가장 가까운 이웃인 나의 가족. 친구. 친척. 직장동료. 이들이 적어도 나와 접속하는 한에서는 최소한 나를 좋은 이웃으로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그들과 마주 대하면서 느끼는 희노해락의 감정이 있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내가 날마다 보고 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의 움직임이란 것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언제나 순수한 것은 아님을 안다.
아내에 대한 사랑도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알고, 심지어는 자식도 사랑하기보다는 내가 달성하지 못한 꿈을 대신 해줄 수단으로 삼는 듯한 무의식적인 행동을 종종 발견한다.
결국 나라는 인간을 되돌아 볼 때 누군가 나의 삶을 살기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삶을 살고 싶어하지 않듯이 남도 나의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다른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은 삶을 정말로 치열하게 살지 못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삶에 충분히 만족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을 그렇게까지 부러워하지 않았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를테면 나는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욕구를 언제나 마음껏 충족하지는 못한다. 그러면 그러한 욕구를 이 세상에서 마음껏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어야 했을 것이다.
나는 잘 살고 싶다. 지금도 돈에 쪼들리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럼 나는 마땅히 이건희가 부러워야 하고 이건희처럼 잘 살기를 갈망해야 한다. 그런데도 왜 나는 이건희의 삶을 살고 싶어하지 않는 걸까?
어떤 한 욕망에만 몰두한다면 정말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 속에 돈을 잘 벌고자 하는 욕망만이 가득 차게 된다면 어느 누군가의 성공비법을 찾고 그것을 모방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노력해야 한다.
어찌 보면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칭해지는 사람은 어떠한 하나의 욕망이 그의 전인격을 사로잡아서 그를 그 방향으로만 극단으로 몰고간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의 삶을 무시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그러한 치열한 삶이 그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주었을까? 설사 그가 행복했더라도 그러한 삶의 태도를 모방하는 것이 나에게 행복을 보장해줄 수 있을까?
나는 지금껏 남을 특히 부러워하지 않았으니 이제 남은 인생도 그저 뜨뜨미지근한 내 삶의 태도에 그냥 만족하면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