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독서노트네요. '밑줄'이라는 메인메뉴와 '의식의 흐름'이라는 디저트를 테이블에 올려봅니다.
오늘의 재료는 "호모스피리투스"입니다. "진실과 거짓"리라는 호박사님의 책과 요리조리 자르고 붙이면서 맛보는 중입니다.
구도자는 판단하지 않고 관찰하고 알게 되는 법을 배웁니다. 하나의 위치가 다른 위치보다 더 나은 것은 아니며 그저 다른 맥락화를 나타낼 뿐이지요.
판단을 해버리면 그 시점으로 고정되어 버린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도 걸러져 버린다. 경험을 통한 앎이 아니라 그렇다고 믿어 버린 것이다. 판단이 아닌 그저 관찰을 함으로서 몸이 알아지게 합니다. 믿거나 증명하려 애씀이 아닌 그저 앎이 일어납니다.
믿음은 그래야만 한다라는 뉘앙스라면 앎은 그냥 그런 것입니다.
보다 앞선 구도자는 '저 밖'이라든지 '이 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벌어진 모든 일에 책임집니다.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일이 사실은 이전에 '안'으로 여겨졌던 것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는 자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투사하려는 성향은 해소되지요. '무고한 피해자' 위치성은, 그 모든 가짜 '무고함'과 함께 가면을 벗습니다.
그래서 역경이란 이전에 부정되어 무의식 속으로 억압되었던 것의 결과로 보입니다. 내면을 바라봄으로써, 사람들은 대처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역경의 근원을 발견하지요.
사람들의 경험을 결정하는 요인은 바로 신념입니다. 외부의 '원인'이란 없습니다. 사람은 무의식적인 은밀한 투사에서 얻어지는 은밀한 대가를 발견하지요. 단순히 자신의 불평불만과 고민을 일일이 적은 다음 방향을 거꾸로 돌려놓기만 해도 자신의 저변의 프로그램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날 미워해."는 자신의 내면에 잇는 미움에서 비롯되지요. 우리가 자신의 세계의 저자로서 책임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잇는 근원에 가까워집니다. 타인을 사랑할 때, 우리는 자신이 사랑과 사랑임에 둘러싸여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득을 기대하지 않고 무조건 생명을 지지할 때, 생명은 그 대가로 우리를 지지해 주지요. 이득을 동기로 삼는 것을 포기할 때, 생명은 예기치 못한 관대함으로 반응합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지각할 때, 모든 헌신적인 수행자의 삶에서 기적적인 일이 나타나기 시작하지요. 예기치 못한 발견, 우연의 일치, 행운이라는 형태로 조화로움이 나타나고, 이러한 것들은 의식의 자리에서 자신에게로 되밀려오는 물결이라는 각성이 마침내 일어납니다.
세상이 나를 짜증나게해 화나게 해는 결국 내 안에 짜증과 화가 있기 때문임을.. 세상이 이래 저래 불평은 내면의 억압의 투사..
만약 내 안이 평온하다면 아무일 없이 그것에 대해서 해야 할일을 할 것이다. 감정이 들쑥 날쑥 일어나지 않고.
장자의 빈배던가. 두개의 배가 마주하는데 상대배가 자신의 배를 안피한다고 온갖 짜증을 내었는데 빈배인것을 알고는 부끄러워졌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시선이 닿는 일체의 것을 무조건 사랑하겠노라고 결심함으로써 가슴의 길을 거기에 더합니다. 이것은 쓰레기통 조차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걸 의미하지요.
모든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고 그래야 한다. 무언가에 대해서 사랑 이외의 감정이 떠오른다면 안의 무엇인가 건드려진것이다. 알아차림의 기회이며 사랑으로 돌아설 기회다. 수용과 용서의 기회다. 그러면 짜증 분노가 아닌 해야 할일이 자연스레 일어난다. 옳고 그름 이기고 지고의 게임이 아닌 그냥 거기에서 모든 것을 하나됨으로서 경험하며 필요한 것이..
정말 온전한 사랑 그 자체는 신일 것이다. 모든 것 은 곧 자신이고 자신이 곧 모든 것이니.
판단과 비판을 포기할 때 평화로운 안도감이 찾아드는 것은, 그러한 것이 징벌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끊임없는 무의식적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자기는 자신이 타인에게 할당한 바로 그 징벌과 선고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사는데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동안에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설정하기 때문이다.
판단 비판은 내면의 투사다. 이렇가고 단정버림 경험을 차단한다. 때로는 딱 못박고 가야 할때도 있을 수 잇지만 그것이 온전한 진실이 아니며 변화할 수 잇다는 가정을 밑에 늘 깔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니 무언가 과학적사고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 가설과 검증. 판단 비판을 강하게 고정하는 것보다 하나의 가설로 여기고 경험해 나가면서 검증해 나가기 물론 검증 된것 자체도 현재에 인식하는 정도의 진실이지. 그것도 일종의 가설로서 다루는 것..
흠.. 과학적 사고에 관한 무언가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요즘 하루가 참 빠르네요. 무언가 했더니 끝!!!!
오랜만에 무려 맥주 한잔이나 마셨어요 ㅋㅋㅋㅋ
취하네요 이거 음주 포스팅입니다 응?
모두들 꿀밤 되시고 또 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