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움직였고, 그대로 썼습니다.
제가 좀 이런 식으로 포스팅을 합니다.
스티밋은 수정이나 삭제가 어렵기 때문에 퇴고를 몇번은 해야한다고 하지만요.
처음 블로그를 시작할 때부터,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떠드는 곳으로 사용하다보니,
종종 이렇게 두서없이 떠들고, 끄적일 경우가 있습니다.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
업계 관련 사이트에서 칼럼을 보는데, 등장하는 분이 내가 모르는 교수님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게, 졸업한 지가 9년이 되어가니까.. --;
문득 내가 나온 대학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찾아보려고 사이트에 들어가 봤다.
어이쿠. 내 지도교수님이셨던 DC 교수님은 여전히 계시다.
물론 어디 가셨을 거라는 생각은 안했지만.
그리고 DK교수님은 다른 곳으로 옮기신 모양이다. 아님 안식년이신가?
매 수업때마다 정말 엄청나게 혼이 나곤 했었다.
(사실 곤죽이 되게 깨졌다.)
(넌 임마, 매번 말로 다해! 니가 국회의원이야!)
내가 대학에서 들이받고 싶었던, 그리고 소심하게 맞서봤던 유일한 교수님.
교수님.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100% 잘못한거 맞습니다.
왜 그렇게 혼을 내셨는지 현업에 와보니 알겠더라구요.
전 더 혼나도 되는 녀석이었습니다. 제가 무슨 상위 5%도 아니고..
현장에서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버텨야하더라구요.
그리고 새로운 교수님들, 그리고 새로운 과목들.
학교를 다니면서 토나온다고 했던 건 다 까먹었는지..
'이건 무슨 수업일까?' 궁금해졌다.
그러다 왠지 학교다닐 때 생각도 나고.. 그래서 다시 또 서핑에 서핑.
(보드라고 이름 붙은 것들 중 잘 타는건 하나도 없지만. 서핑~)
당연히 내가 학교다닐때 사용했던 싸이월드 학과 커뮤니티는 없어졌다.
졸업하고 거의 발을 끊다보니 어디로 옮겨졌는지도 모르겠고.
나에게 대학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처음엔 탈출구였고, 그다음에는 정말 지겹도록 싫은 곳이 되었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든 다시 기어들어가야만 하는 곳이 되었고..
내가 좋건 싫건, 내 간판이 된 곳이다.
내가 여기를 나와서, 이걸로 밥벌어먹을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난 상당히 늦게 사춘기가 온 타입이었다.
나의 고교시절은 반항이 일상이었다.
수능안본다고 했다가 아버지께 비오는 날 먼지나게 두들겨 맞고 시험을 봤다.
당연히 좋은 성적은 아니었다.
벼락치기로 성적을 올렸다고 그게 실력이 되진 않는다.
모의고사에서의 성적은 실전인 수능에서 반토막이 났다.
다행스럽게도 고3 내내 공부는 뒷전이고, 여자뒷꽁무니나 쫓아다니던 녀석이
SKY에 가는 만화같은 일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다.
어딜가나.. 고민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점수를 놓고, 학교와 학과를 찾던 중.. 친구를 보고, 결정을 했다.
혼자서 헤메는 것보다는 친구라도 같이 있는게 낫겠다 싶었다.
솔직히 원서를 쓸 때까지도 이런 학과가 있는지도 몰랐다.
참고로 그때 날 이 대학, 이 학과로 이끌어 준 친구는 전혀 다른걸로 먹고산다.
(누구이야긴지 알지? 보고있나, s**o? 하하!)
그리고 이 대학, 이 학과에 입학할 때까지도,
그때까지도 사춘기였던지라.. 역시 공부는 뒷전이었다.
친구가 내 멱살을 잡고 수업에 들어가지 않는이상,
내 발로 수업에 들어가는 날은 별로 없었다.
부모님은 없는 살림에 대학까지 보내주신건데도, 내가 정신나간거였다.
하지만 그땐 공부하는게 그렇게도 싫었다.
여자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지만, 다행히 미쳐있진 않았다.
대신 동아리에 미쳐서 살았고, 되도않는 그림과 글을 끄적이며 지냈다.
당연히 성적은 곤두박질을 쳤고, 부모님과의 갈등은 극을 달렸다.
기본적인 삶이 그렇다보니, 결국 학교에서도 여러가지 문제가 생겼다.
특히 인간관계가 이상하게 꼬였다.
내가 뭘한건 아닌데, 뭘 하지 않아서 관계가 더 꼬였다.
그리고 전혀 다른 문제가 생기면서 20대 자체가 완전히 꼬여버렸다.
그 문제의 여파는 지금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목을 매달정도로 고생을 하고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때서야 알았다. 이게 얼마나 좋은 거였는지.
정말 힘들게 돌고돌아서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다행히 그 나이에, 뒤늦게 시작한 공부가 재미있었다.
디자인대학에서 과제가 재미있었다면 할말 다한거다.
다시 돌아온 1년반은 말그대로 미쳐돌아갔다.
성적으로 과탑도 해봤고, 학부 2등도 해봤다.
장학금이라는 것도 받아봤다.
하지만 그순간 나는 후배들에게 민폐였다.
수업도, 성적도, 진학도, 과내서열과 인간관계도.
신입직원들 노는 곳에서 이사님이 끼어들어서 가시나 춤을 추는 격이니..--;
그래서 독고다이로 몰아쳤다.
정리하려고 더 폐를 끼치기보다 빨리 방을 빼주는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옳았다.
어차피 시작부터 아싸였고, 아싸는 아싸다운게 좋을 때가 있다.
하지만 졸업을 하고 나서 난감해졌다.
취업시장은 빙하기가 시작되었고, 내 나이는 서른이었다.
대학원은 결국 물건너갔고, 주머니는 든게 없었다.
배운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걸로 근근히 먹고 살았다.
계약직을 전전했고, 그마저도 없으면 아르바이트와 일용직으로 버텼다.
몇번의 인연이 끝이 났고, 한동안 여자에 대한 관심도 끊었다.
결국 지금처럼 이 겨울에 겨울보리라도 키워먹을수 있게 해준건,
대학이라는 간판과 학과에서 배운 것들이었다.
옛 어른들 말처럼 배운 도둑질이 그래도 쓸모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지만, 이걸로 울타리에 갇혔구나 싶기도 하고.
아이고,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역시 아재가 추억을 떠올리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삼천포로 빠지기 마련이다.
누가보면 술이라도 한잔 한줄 알겠다.
여튼.. 다시 아까의 서핑이야기로 돌아가서..
서핑을 하다보니 대학을 고민하는 어린 친구들의 글이 더 많이 보였다.
우리 대학, 학과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성적은 어떻게 나와야 하는지.. 실기는 어떤지..
등록금은 얼마인지.. 장학제도는 어떤지..
그리고 합격했다고 기뻐하는 글들과 신입생을 환영하는 글들.
이런 글들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여길 왜 오려고 하는거니.. 아가, 여기 고생길이란다. 오지마.]
순간 '아, 이러다 꼰대가 되는거구나' 싶었다.
이 친구들은 정말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데, 도와는 못줄망정 찬물이라니.
나도 이걸로 밥벌어먹고 살면서 이런 소리를 하면 안되는데 싶었다. --;
물론 '왜 오려고 하냐'는 생각이 괜한 핀잔은 아니었다.
이 바닥이 얼마나 고생인 길인지 알다보니 추천하고 싶지 않긴하다.
나처럼 힘이 들까봐 걱정이 되기도 하고,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있겠냐마는..
이왕이면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잘하는 것에 그 노력을 쏟는게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밖에서 보이는 것 만큼 비젼이 없다는 것도 알다보니,
그 아이들이 빨리 다른 길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 아이들이 선택할 일이다. 내가 뭐라고 이런 오지랖을..--;
이렇게 아재력이 쌓여가고, 나도모르게 꼰대력도 생기는 것 같아서..
괜스레 한숨이 나온 단테였습니다.
아, 또 혼나겠다. 또 뭔 말도 안되는 포스팅을 싸질러놨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