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열한 거리」에는 아래와 같은 대사가 나온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두 가지만 알면 돼. 너가 원하는 것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피카소 같은 천재라면 굳이 저런 격언 따위는 익힐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알아서 사람들이 맞추어 주었을 테니까. 피카소는 어린 아이가 되는 데에 자신의 시간을 쓴 사람이다. 머리를 쓰지 않아도, 자신의 원형으로서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었던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 부럽다.
타고난 성격이 어린애 같은 구석은 그 누구보다 내가 많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서포팅 받을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아 결국 어린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 되는 데에 시간을 쏟으며 살 수 밖에 없는 듯 싶다.
어른이란 막연히 나이가 든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만화책 <데스노트>를 보면 이름을 적으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노트가 등장한다. 누군가 이 노트를 이용해 매일 범죄자들을 처형하고, 그 처형자의 정체를 추적하는 것이 이 만화의 줄거리다. 실제 범인인 주인공은, 이 데스노트의 소유자가 10대의 소년일 것으로 추리한다. 어른이라면 자기 이익을 위해 이 노트를 사용할 뿐 굳이 세상을 바꾸는 데에 이렇게 열과 성을 쏟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평범한 사람들이 부딪혀가며 만들어지는 어른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굳이 의미 따위는 찾지 않고 거짓과 기만 없이 자신의 욕망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행위를 거기 달성하는 데에 집중한다. 바뀌지 않을 세상이나 다른 사람 따위에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얼핏 보면 상당히 관대하다. 원하는 것을 이루는 데에 온 집중을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니까.
협상론 뿐 아니라 인간사의 전략을 다룬 모든 서적은 목적을 명확히 하고 다른 것은 버리라고 주문한다. 어린 아이의 가장 큰 특징이 목적 없이 그 현상을 순수히 즐기는 것이고 상대의 반응이 어떻든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출하는 것이라면, 실은 협상에 대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어린 아이의 원형과는 정반대의 모습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피카소처럼 내키는대로 붓을 흔들어도 사람을 끌 수 없기에, 원하는 것을 안기 위해서는 큰 그림을 위해 작은 퍼즐 조각들을 인내심을 가지고 맞추어 나갈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 것을 안 해도 피카소가 부럽다고 한 것이다. 일단 인간 본성을 거스른다.
첫째, 사람은 자존심 따위로 인해 자기 욕망에 대해 의외로 솔직하게 직면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 감정의 근원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에도 생각이 필요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깊게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즉 무엇이 자기 삶의 큰 그림이 되어야 하는지를 모른다.
둘째, 사람은 보는 것을 믿기보다 믿는 것을 보는 것을 선호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투쟁하는 것은 불가능해보일만큼 괴로운 경우가 많다. 일단 세상이라는 산에 비해 자신의 현실은 너무나도 보잘 것 없으니. 그 빈곤한 현실을 보는 것보다는, 이데올로기나 어떤 믿음으로 빈 자아를 채우는 경우가 많다. 인생은 원래 의미가 없다. 종종 이 허무감을 견디지 못해서 본인을 진지하게 신의 모사로 생각하거나 민족 통일이나 계급 투쟁을 위해 앞에 선 혁명의 기수, 국가의 무궁한 영광을 위한 구성원 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거기에 맞게 니 편 내 편을 나누며 한쪽을 증오하며 편하게 살다가 일평생을 마치는 경우도 흔하다.
이 같은 점에서 본다면 특정한 믿음 체계를 가진 사람은 근본적으로 욕망에 기반한 목적 지향형의 인간이 아니며 따라서 어른이 아니다. 따라서 실은 그들에게는 협상론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에서 종교가 없는 동부의 고소득 미국인들보다 남부 저소득층 기독교인들의 행복도가 훨씬 높다. 그렇다면 그냥 살면 되겠지.
하지만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 즉 어차피 어른이 되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협상하는가가 전부다. 그것은 학생과 어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과도 연관된다.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맥이 아니라 공부다. 어른이 아닌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실력을 갖추는 것이다. 나이가 먹었지만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살았던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충실하게 시간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은 남에게 줄 것이 없다.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많아도 이들을 활용해 어떤 이윤을 취할 수 없다. 마원이 말한 서른 이후의 빈곤은 본인 책임이라는 것은 이와 같은 관점이다. 단순히 재산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팔을 것과 팔 사람이 있냐는 질문인 것이다.
반면 어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맥이다. 하수는 이윤을 남기지만 고수는 사람을 남긴다는 것은, 뻔질나게 술을 마시며 음담패설이나 정치인 욕이나 할 사람을 남기라는 뜻이 아니다. 소위 말하는 플랫폼 비즈니스, 바로 유통망을 남기라는 의미다. 아무리 실력 있는 변호사라도 사건을 많이 수임할 수 있는 변호사의 상대가 될 수는 없다. 자기 판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을 가져 간다. 이는 모든 분야가 그렇다.
그런 점에서 인맥의 양과 질이라는 것은 어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쌓아가고 유지하며 결정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고객으로 만드는가는 모두 협상의 문제로 귀결된다. 즉 어떻게 협상하는가는 주제는 인생이라는 전투에서 일단 링에 오를 역량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주제일 것이다.
한편 개인사적으로 이것은 내가 세상에 하는 항복선언이나 다름 없기도 하다. 누구는 아니겠냐만은 나는 나를 다른 사람에게 맞추는 것을 싫어한다. 기본적으로 사람 자체가 모가 나 있고, 나에 대한 평가는 시기마다 달랐지만 어느 시점에든 자기 주관은 지독하게 강했다. 하지만 나는 여러 차례 자신을 바꾸어 왔는데 그것은 모두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르시스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이 평범한 남자의 응석을 받아줄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성차별적 발언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만 어떤 점에서 여자와는 분명 다르다. 정말 못생긴 여자가 아니라면, 그 목적이 어떻든 간에 그 여자의 자기 연민과 술 주정을 몇 시간이고 참고 들어줄 사람은 널려 있다. 내 이야기 따위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만약 조각 미남으로 태어났다면 조금은 달랐을 것이다. 어쩌면 여자나 등쳐먹고 생활비를 타먹으며 글이나 쓰며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놈팽이 같은 삶이다만 그랬다면 아이 같은 예술가적 원형이 그대로 남아 어쩌면 지금쯤 다른 방식으로 무엇을 이루었을지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고 평범한 남자로서는 과하게 원하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내 자아에서 탈피해 주기적으로 세상에 나를 끼워 맞추어야 했다. 사회에서 보다 온전히 수용되는 직업을 택한 것도, 그 과정에서 독서하는 스타일을 완전히 바꾼 것도, 사람들(특히 여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싶어 화술을 바꾼 것도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실은 내 삶을 관통하는 코드는 자기애가 아니라 항복인지도 모른다.
한동안은 내가 원하는 것을 싸그리 이루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잊고 있었다.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은 진정으로 자유롭다. 하지만 이룬 것들은 모두 더 이상 자극이 되지 않게 되었고, 최근 몇 년 간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종전의 방법론은 그 이상의 역치를 얻는 데에 있어 효용이 없다는 결론을 내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결국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확보할 줄 알아야겠다는 결심 하에 이 협상론을 쓴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고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성공의 방정식이 없으니까.
작년의 실패를 복기하며 협상과 관련된 5권 정도의 책을 읽었고, 다음 달 안에 다시 그 정도의 책을 읽을 생각이다. 이 쟁점에 있어서는 100권의 책을 읽어도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한다.
물론 책 수십 권 읽었다고 내가 협상의 달인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남들 이상의 것을 얻는 데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노력보다도 타고난 그릇의 크기일지도 모른다.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다. 나는 태생적으로 덕이 부족한(이 한 마디가 내 모든 단점을 서술하기에 가장 적합할 듯 싶다) 사람이다. 홍준표 같이 그래도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업적도 많은 사람조차도 하고 싶은 말을 즉석에서 내뱉지 않으면 병이 나는 습성이 있다.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의 장르는 끈덕진 협상과는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답은 없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패션 잡지의 표지 모델로 나갈 때 먹방을 찍으며 두툼한 배를 잡고 맛집 포스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분명 가치 있는 장르니까. 하지만 나라는 호기심 많은 인간이라면 최소한 헬스 클럽에서 몇 달 땀이라도 흘려보지 않으면 영원히 그 잡지의 모델을 쳐다보게 될 것이다. 일단 해보지 않고 포기할 수는 없다.
이것이 내 협상론의 동기이자 서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