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끝자락, 내방 작은 창 밖으로 한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장맛비가 시원하게 내린다.자연의 소리는 언제 들어도 참 좋다.
빗소리에 젖어서 문득 내가 나를 가만히 곱씹어 보니 나도 참 평범한 사람은 아니구나 싶다. 평범하고 무난하게 남들처럼 비슷하게 닮아가며 둥굴둥굴 살지 못하고 생겨난 모냥대로 모가난 그대로 조금의 거짓도 없이 참 충실하게도 살고있는 사람이 바로 나란 사람이다.
당최 우주의 어떤 기운을 타고 났길래 이리도 나다운 고집스러움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 지기도 한다.
일단 무엇이든 내 마음에 들어와 내것이 된 것에는 그것이 생을 다하거나 많이 불편하거나 더이상 쓸모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오래오래 곁에 두는 편이다. 물건이야 내가 버리지 않는 이상 내곁에 있게 되니 애정하는 옷은 족히 20년이 넘은 옷도 있고, 휴대폰도 일단 내 품에 들어오면 신상품이 나오건 무료폰이 생기건 간에 내내 변함없이 내 손안에서 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하다못해 20년 전 내게로 온 나의 첫 폰번호는 여전히 내 폰번호로 남아 있기도 하다.어떤이는 애절하게 그리운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것 아니냐며 영화같은 시나리오를 쓰기도 하지만, 아쉽게도 사랑할 때 가진 사랑을 온전히 불태워 완전연소를 시켜 버리는 나같은 사람은 다 타버린 잿더미에 미련을 두지 않는법이다. 다만 멀쩡히 기능하는 것들을 버리거나, 익숙해서 편안한 그 무엇을 쉽게 바꾸거나 갈아치울 이유를 여전히 찾지 못했을 뿐이다.
관계에 있어서 내가 제일 힘들어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거나 쉽게 약속하고 쉽게 깨버리는 일이였다. 그만큼 질실함은 내 삶의 중요한 키워드 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진실이 결여된 말이나 행위를 구분하는 능력이 오랫동안 나에게는 없었다. 그리하여 성인이 된 후 20여년 간은 믿고 상처입고, 또다시 믿고 상처입고를 반복하며 어느새 나의 가슴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여전히 나는 대책없이 사람을 잘 믿는다.그러나 그 길고 긴 담금질 덕분인지 이제 조금은 타인의 말과 행동과 눈빛에서 진심과 가식 혹은 진실과 거짓을 발견하는 힘이 조금은 길러진 것 같기도 하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나에게 믿음을 깨고 상처를 입혔던 그들 모두는 내 감각의 스승들이다.
물건들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내가 선택한 사람을 단 한번도 먼저 놓아버린 적이 없다. 물론 먼저 다가간 적도 없거니와 어쩌면 먼저 다가간 사람이 떠나가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일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그루 나무처럼 늘 항상 그자리 그대로 서 있었다. 그저 다가오고 떠나가는 것들을 지켜보면서..
어쨌거나 모든 이별에 있어서는 흔한말로 내가 다 차인셈이 되어버렸다. 결코 잘 맞지 않는 관계임을 알면서도 떠나는 법을 모르는 날 대신하여 용기있게 차버리고 떠나가 준 그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내가 나를 알지 못했던 시절, 대학만 졸업하면 남들처럼 차를 끌고 다니게 되리라 생각 했었다.
무더웠던 95년도 여름방학에 애써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뤄가며 기쁨의 면허증을 획득하였다.
그 기쁨의 면허증이10여년이상 바쁘게 사업을 할때에도 무용지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나중에 알게된 나는 자가용보다 대중 교통이 더 좋고,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타는 것이 더 좋으며 ,걷는것이 더 좋은 그런 사람이었다.여전히 나의 면허증은 주인 잘 만나서 23년간 장농에서 푸욱 잘 쉬고 있다.
몇해전 나는 사무실겸 숙식 공간으로 사용하던 방 셋에 넓은 거실이 있던 빌라에서 작은 원룸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집이 작아지니 하는 수 없이 가전 제품과 가구들은 헐값에 처분해야만 하였고 그 넓은 공간을 채우고 있던 물건들로 인하여 이사는 내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겨 주었다.
그렇게 나의 두번째 삶의 공간이 된 지금의 내 방에는 조금은 특별한 점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채워진 방이라는 점이다. 원룸촌 특성상 사람들이 쉽게 나가고 들어오기도 하지만 아직 기능을 다 하지도 않았으며 충분히 예쁘고 쓸만한 물건들이 하루가 다르게 제각각 다른 쓰임의 물건들로 길거리에 나앚아 있었다. 누군가에게 쓰임이 다해 버려진 물건들은 다른 누군가에겐 기쁘고 감사한 선물이 되기도 한다.
쓰레기통에 처박혀 썩어가기엔 나 아직 쓸만하니 제발 거두어 달라는 하소연이 귓가에 메아리가 되어 들리는듯 하였다. 그렇게 채워진 내 방엔 청소기 밥솥 선풍기는 물론, 2단행거, 소파, 엔틱장식장,전신거울 책상, 원목 책꽂이에 예쁜 조명들 까지 모두가 구사일생 쓰레기 신세에서 살아 남겨진 아이들 뿐이다. 그들의 에너지가 좋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삶에 지쳐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 이거나 아이들은 이 공간을 무척 좋아한다. 물론 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ㅎㅎ
어쩌면 이 공간은 나의 것이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의 것으로 채웠으니 모두의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언제든 누구나 쉴 공간이 필요하면 이공간에서 쉬다 가어도 좋을일이다.
기본 10년은 족히 되었을 내몸에 잘맞고 익숙한 옷가지들과, 새것이 아닌 손 때묻은 물건들과 모가난 그대로 울퉁불퉁 제멋대로 살아가는 고집스런 한 사람의 에너지로 채워진 이 작고 소박한 공간에,
나의 진심과 순수를 가득히 담아서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