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ego)는 라틴어이고 철학적으로는 자아(自我)를 의미한다.
에고는 외부의 대상세계와 구별되는 인식 행위의 주체이고,
대상의 세계에서 체험하는 내용이 변화한다고 해도 동일성을 지속하며,
작용.반응.체험.사고.의욕등의 작용을 하는 의식의 통일체이다.
성서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에덴동산에는 아담과 이브가 있었다.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기 전과 후에 자기 동일성을 가지고
있었을까?
성서에는 그들이 선악과를 먹은 결과로 다른 존재가 되었다고 기록되어져
있다.
"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위 구절은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로 인하여 부끄러움과 죄의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지만, 달리 말하면 순수한 영혼을 잃었다는 의미도
포함되어져 있다. 위 성서의 구절 속에서 " 눈이 밝아져" 라는 것은,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철학적으로 일컫는 에고(ego)의 탄생,
혹은 이기적 자아성의 등장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태초의 인간이 어떻게 등장을 하였고 어떻게 의식의 구조가 변화해
왔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인간은 신에게서 부여받은 완전한 순수함
대신에 오로지 생존만을 위한 에고적 인격성을 가진 독립적 주체로서
변화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에덴동산의 이야기는 태초의 완전한 신성을 잃어버리고,
순수한 영혼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육체적 생존과 연계된 상태에서
본질적 자아를 찾아서 방황하는 에고의 끝없는 결핍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아마도 살아남기 위해서 오직 생존 본능으로 관계를 단절하고
파괴하며 살아가는 나르시시즘(자기애)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되었을 것
같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나르시시즘(자기애)을 누구나 선험적 혹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 이를테면 육체를 가진 유한(有限)의
현상계에서는 에고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것이 에고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기애와 이기주의 속성을 가진 것이 에고이기에
에고가 강할 수록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고, 타자들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 에고가 나 혼자가 아닌 모든 인간이 가진 특성이기에
사회적 갈등이 유발된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에고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에고를 통제할 수 있는
또다른 자아 즉 슈퍼에고가 존재한다.
우리가 겪고있는 내적 갈등은 에고적인 나와 인식의 주체인 본질적인
나와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호 보완적 갈등이다.
배가 고픈 것이 에고의 알아차림이라면 그 배고픔을 참을 수 있는 것은
슈퍼에고의 개입이 있기 때문이다. 에고는 이기적 욕망을 추구하지만
슈퍼에고는 이타적 순수 욕망을 추구하고, 그 둘 사이에 사유(思惟)가
개입되면서 인간적 도덕이나 사랑이 가능할 수 있다.
그래서 에고를 인간의 육체적 욕망에 가까운 의식이라고 한다면,
슈펴에고를 신의 본성에 가까운 고차원적인 의식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에고는 고집과 아집으로 무장하고 있어 웬만한 노력으로는
통제할 수 없다. 에고는 쉽게 굴복하지 않고, 자칫하면 저항을 통해
자학이나 상대적 공격을 감행하면서 폭력성을 정당화 한다.
강한 정신 수행이나 도덕적 깨달음이 아니고서는 에고가 가진
자기 중심적 사고를 다스린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 에고를 다스리는 것이 어려운 것이기는 해도 분명하게 다스리는
방법은 있다. 나 자신의 에고에게도 그러하지만 타인의 에고를 다스리는 것
역시 동일한 방법으로 변화해시켜나갈 수 있다.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스토리 중에는 은유적으로 이 에고의
길들이기에 해당되는 내용이 있다.
어린왕자가 여우와 나누는 대화내용 속에는, 에고의 길들이기가 어떤
것인지 은유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만일 네가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야 한다는 말이야."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여우가 대답했다.
"인내심이 필요해. 일단은 나와 좀 떨어진 풀밭에 앉아.
내가 하는 것처럼 이렇게.
내가 너를 살짝 곁눈질로 쳐다보면 너는 아무말도 하지말고 그대로 있어.
말은 수많은 오해의 원인이 되거든.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 때마다
넌 내게 조금씩 다가오게 될거야."
다음날 어린왕자는 여우를 찾아갔다.
여우가 말했다.
"매일 같은 시각에 오는 게 좋을거야. 만일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4시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마침내 4시가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안절부절못하게 될거야.
그러면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돼.
그런데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언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지 모르잖아.
그래서 의식이 필요한 거라고..
저기 밀밭 보이지?
나는 빵을 좋아하지 않아. 밀은 나에게 아무 필요없거든.
그러니 밀밭을 바라봐도 나는 아무 생각도 느낌도 없어.
그건 슬픈 일이지.
하지만 아름다운 황금빛 머리카락을 지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밀밭은 내게 아주 근사한 광경으로 보일거야.
밀밭이 황금 물결을 이룰 때마다 네가 기억날 테니까.
비유컨데,
야생 동물에게 먹이를 주게 되면 처음에는 경계를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진정성을 가지고 꾸준하게 주는 것을 반복하면 조금씩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된다. 결국 인간과 야생 동물 사이에도 상호 인정과
신뢰가 생겨나면서 친밀감이 형성된다.
에고는 받으려는 특성을 가진 존재이기에 사랑을 주고 또 주게 되면
그에 따른 변화와 반응이 일어나지만, 에고는 본래 생존을 위한 본능이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에고역시 그 시작점이 신의 순수한 본성에서 나온 것이기에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알아차린다.
타인에게도 그러하지만, 이것이 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나의 에고를 향하여 끝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진정성을 가지고
사랑을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순순한 신의 본성에 가까운 슈퍼에고적인
자기사랑인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육체적 욕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에고가 아닌 순수한
슈퍼에고적인 관점에서 내가 바라는 것, 원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면
나의 현실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순수한 사랑으로 나를 다스리고 마음을 다독인다는 것,
나에게 전하는 말, 나에게 들려주는 나만의 속삼임:
고마워
사랑해
정말 아름다워
행복해
언제나 나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