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문학가인 '니코스 카잔치키스' 는 "그 사람이 먹는 것이 무엇으로 변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라는 말을 남겼다.
이 글을 읽으면서 언뜻 생각해보면, 대변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카잔치키스가 말하는 것은 다른 것인데, 음식을 먹은 사람이 그 음식을 먹은 에너지로 무엇을 하느냐의 측면, 즉 힘을 쓰거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혹은 남을 돕는 데 사용하거나 무엇인가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니코스 카잔치키스의 말은, 겉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행위들이 무엇인가를 먹고서 그 먹은 것이 무엇으로 변하여서 드러난 것이냐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 말은 일명 " 인간은 밥만 먹고사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먹고사는 존재다" 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인간은 육체적인 존재인 동시에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감에 의미가 있다고 느낄 때에 비로소 삶의 활력이 생긴다. 만약 심하게 우울함을 느끼고 쓸쓸함이 많다면, 이것은 존재감의 의미가 상실된 데에 따른 공험함이 많은 것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서 의미를 추구하기 보다는 재미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당연한 것처럼 방송, 기업과 국가마저도 엔터테인먼트 문화를 조장하며 재미를 극대화시키는 것에 전념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일시적으로 쾌감을 주는 오락으로 변하고 있어서, 깊이 있는 대화도 어렵고 깊이 있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누군가 깊은 성찰의 인문적 지성적 대화를 하고 있으면, 이것을 견디지 못하고 마치 재미나 유머 가벼운 농담 등을 좋아하는 개그같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런데 재미있는 쾌락중심의 개그같은 생각과 그런한 오락문화들, 그리고 그러한 대화내용 등이 당장은 재미가 있지만 그것은 금방 싫증이 나면서 계속해서 더 강렬한 더 재미있는 것을 요구하게 된다. 이것은 정말 비상식적이고 저급한 문화이고, 진지함과 진정성이 사라져 삶의 의미조차 찾지 못하는 불운한 시대로 전락되어져 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인생이 힘들어도 견디어 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 의미를 부여할 만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런지,
내적인 힘이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안에 깃든 의미를 찾는 것에서 나온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에게 아이 무게만한 돌덩이를 계속 안고 있으라고 한다면 아무도 그렇게 할 엄마는 없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아기를 안고 있으라고 한다면 몇년이라도 안고 있을 수 있다. 그만큼 의미가 있고 의미를 부여한 것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인생이라는 여정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스팀임에서도 오랜동안 이러한 고민들이 이어져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가볍고 경박한 재미위주의 포스팅에 대한 과도한 보상수익, 반대로 생각하는 의미있는 포스팅은 오히려 홀대받는 시스템적 구조, 그리고 그러한 가볍고 천박함의 위험성을 알지 못하고 당장의 수익구조에만 열을 올리는 천박한 의식수준의 스티미언들, 그러한 분위기를 질타하면서 계속해서 개선책을 내세우지만 결국에는 제자리 걸음,
그러나, 그 동안 스팀잇안에서 시간이 흘러오면서 확인하게 되었던 것은, 당장 재미있고 유머러스하고 개그적이고 가볍고도 가벼운 포스팅들이 지금은 좋은 것 같아도, 그 스티미언들은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지쳐서 주저앉더라는 것이다. 먹는 것, 입은 것, 여행가는 것 에 대한 포스팅을 보면,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부여하는 자기 성찰과 사색의 의미부여의 재해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일진데, 그러지 못하고 그냥 보여주기식의 재미있는 포스팅들만 올리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가 황막하게 변해가고 있는 자신의 내면을 대변하기 때문에 결국은 그 사람 스스로가 지쳐버린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