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현자들은 깨달음을 얻고나서 공통적인 진리를 전하기를,
모든 이의 내면에는 우주가 들어있다고 했다.
이것이 현대의 과학적인 관점에서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신체가
우주의 신비로움을 그대로 빼닮은 것들이 많고,
특히 뇌에서 일어나는 상상의 세계속에서 무한한 우주속에서의 신비를
그대로 느껴볼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세계인 우주속에서 하나의 작은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작은 세포하나에서부터
까마득하게 멀리 있는 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만물이
우리의 마음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성서에도 이와 비슷한 구절이 등장하는데,
"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가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사람들이 '여기있다' ,
'저기있다', 말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너희 안에 있느니라 "
성서에 등장하는 이 구절은, 세속적인 종교인들이 천국을 외재화시키는 데 반하여,
위의 성서구절은 철저히 내재화 내면화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세계는, 나의 세계인 소우주라는 명상가들의 말이나, 성서의 구절,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는 공통적으로 무지의 자각을 강조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기자신에 대한 앎이야 말로 지식의 전부이며,
그 앎이 곧 우주의 심오한 진리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기를 안다는 것은 자기를 다스린다는 뜻이고, 결국 내가 나의 주인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수 많은 현상들을 파악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삶이 우리에게 주는 모든 경험의 이면에는 신성한 메시지가 숨어 있다.
긍정적인 경험이든 부정적인 경험이든 베일 하나를 벗겨낼 때마다 지혜가
드러나는 걸 경험한다.
에고라는 껍데기를 뚫고 들어가보면 나도 모르게 가득 쌓여있는 지혜의
보고를 볼 수 있다.
어쩌면 모든 진리는 외계 즉 밖에서는 얻을 수도 찾을 수도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동서양의 현자들은 하나같이 모든 것이 우리 안에 있고 우리 안에
온 우주가 들어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따라서 존재를 탐구하는 것은 외계로 향하고 있는 시각에서 반전(反轉)하여
자기의식으로 내향(內向)해야한다.
매일 눈을 뜨면 우리가 마주치는 상황, 만나는 사람, 직면하는 문제,
다양한 인생 경험은 우리의 내면에 들어 있는 것이 투사된 것들이고,
그것이 나만의 우주 속 세계를 만들지만 그 세계를 벗어나려는 시도 역시
요구되어진다.
"종교 없는 과학은 장님이고, 과학없는 종교는 절름발이다." 라고 말한
아인슈타인의 말에 대해서, 한마디 더 한다면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유적 과정이 빠진 종교와 과학은 존재성 없는 언어적
유희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마음이 내 세계 밖의 세계인 우주를 창조하므로 자연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마음의 작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