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로 '샤오황디'라는 말은 잘 사는 집안에서 응석받이로 자라난 외자식을 일컫는 말이다. 일명 '소황제' 라는 뜻인데, 중국이 경제성장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신흥부자들이 대거 늘어나면서 경제적으로 풍족한 부모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다양한 인생경험의 결핍으로 인하여 정신적 결합이 잦은 것을 경계하기 위한 조치로 일부러 고생여행을 시킨다는 소식이 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식을 키우면서 무작장 오냐오냐 하는 식으로 이쁘게만 받아주고 기르는 것은 7살까지이지만, 그 후로는 옳고 그른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회초리를 들어서 옳은 것과 아닌 것을 구분짓게 키워야 하는것이 부모로서의 올바른 자녀양육의 덕목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겠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야 환경자체가 그러하니, 자기가 생존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올바른 처세술을 악착같이 노력해서 스스로 터득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만, 부잣집에서 자라나는 외자식들은 생존을 위해서 자신을 변화시키나가야 한다는 처절한 자기개발의 강박관념이 상대적으로 덜 하다보니, 아무래도 자립심이나 스스로 노력해서 일궈나가는 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고, 또한 사회적으로도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바르게 구분지어서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클 수도 있는 것이겠다.
가난하고 형제 많은 집안에서 어렵게 자라고, 자수성가하면서 어린 동생들 뒷바라지 다 하고, 알뜰살뜰하게 모으고 아껴서 집안을 일궈내고, 고생을 하면서 사업을 성공하여 살아온 사람의 언행의 깊이와 그 마음 됨됨이라는 것은 재벌가의 집안에서 아주 넉넉하게 먹고 자라고 편안하고 깨끗하고 깔끔한 것만 보고 듣고 자라온 사람이 거대한 사업체를 물려받아서 운영을 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언행을 하는 것과는 당연히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오히려 어렵게 자라오면서 산전수전 고생을 다 겪은 사람이 나중에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하여 있을 때에, 사회적인 대인관계를 맺으면서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당연히 그 깊이가 남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겸손의 미덕을 아낌없이 실천하는 존경받는 사회적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상류상회의 멋스럼움과 메너좋은 고급스러운 문화를 경험하면서 고생을 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 아랫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나 사회전체를 두루두루 돌아보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운 것일 수 밖에 없다.
중국에서는 자신의 귀한 소황제들을 교육시키려는 부모의 마음이야, 결국에는 먼 훗날을 바라보고서 자식이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어린시절부터 고생을 일부러 시키려는 진정 큰 사랑의 마음이겠지만, 이것을 넓게 바라보지 못하는 주변사람들이나 어린아이 입장에서는 당장에 왜 이런 고생을 시키는 것이냐는 불만이 나올 수 밖에 없기도 할 것이다.
중국에서 돈 많은 부잣집에서 자식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서 실제로 고생여행을 시킨 한 가지 사연을 인용하자면, 돈많은 아버지를 둔 외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40일간 미국서부를 여행을 하는데, 10개주, 19곳의 국립공원, 4개 대학을 돌아다니면서 자동차로 거의 1만 1천km를 이동하고, 약 600km 정도는 직접 걷기도 하고 잠은 호텔이나 숙박업소를 이용하지 않으면서 일부러 텐트에서나 차 안에서나 잤다고 한다.
이 고생여행이 한 번이 아니라 2년전에도 있었고 올해도 또 이런 고생여행을 시켜볼 예정이라고 하니, 재벌가의 자식이지만 결코 편안하게만 키울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아서, 그 아버지의 선견지명적인 자식사랑이 참으로 대단하구나 라는 존경심이 들기도 한다.
그의 아버지가 언론에 자신의 사연을 소개하기를, " 그동안 중국의‘한 자녀 정책’ 탓에 돈 많은 부잣집에서 소황제로 자란 아들이 베이징에서 누릴 수 있는 편안한 생활과 주변 사람들의 지극히 편안하기만 한 사랑과 관심에서 벗어나 고생을 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아이는 어려운 상황을 직면하고 극복해야 했고, 이를 생존 경험, 고생 교육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라고 하면서 자신이 아들을 고생시키면서 여행을 다니는 사연을 소개하고 있었다.
또한 이 사연속에 주인공인 아들은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아빠도 똑같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라고 하면서, 자신이 스스로 변화되어져 감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어린아이에 대한 고생여행과 고생시키는 교육방식에 대한 찬반의 논란도 많을 것이고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할 필요가 있겠느냐라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에서나 부모심정에서는 사랑하는 자식을 무작정 품에 안아서 곱게만 키울수는 없기 때문에 스스로의 능력을 기르게 만들기 위해서 매몰차게 바깥으로 내 모는 혹독한 교육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때가 되면 실행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버릇이 잘못들어서 습관이 굳어지면 사회적으로 사람들을 상대함에 있어서 바르지 못한 말과 행동을 함으로 인하여 인생살이가 꼬여가는 더 혹독한 결과를 맞이 할 것이기 때문에 정신머리 똑바로 박힌 부모라면 당연히 자식을 일부러 고생시키면서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겠다.
이러한 올바른 자녀교육법과 훈육법은 우리나라 역시 수 많은 고서에서도 등장을 하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올바른 자녀 가르침의 방식이 오늘날까지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니, 그 중에 하나가 과거 양반가 사대부 집안에서 자식들을 가르칠 때에 7할을 먹거리로 배를 채우고 나머지 3할을 남에게 나눠주는 교육법을 실천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은 먹을 것이 아무리 풍성하게 있어도 절대로 7할만 먹게끔 하고, 그 이상으로 배가 부를 정도로 먹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며, 자신의 먹을 거리에서 3할을 남겨서 자신보다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에게 나눠주도록 가르치는 교육법이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서 스스로 배부름을 억제하면서 참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도록 하며, 자신의 먹거리가 생기는 것은 자연과 다른 사람의 노고에 힘입은 것이니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서 다시 돌려줌으로서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인심을 얻도록 하며, 상호관계적인 노력을 통해서 남들과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이니 자신보다 낮은 사람을 어떻게 헤아려야 하는지를 가르치기 위한 우리 선조들의 지혜로운 자녀 교육법이었던 것이다.
최근에 중국에서 불고 있는 명문가 재벌가의 자녀들 교육법이 참으로 신선하기도 하지만, 세상 어디를 가나 진정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에서는 자식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일부러 사서 고생을 시키면서까지도 가르침을 주고 싶어하는 것이야 모두 똑같은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다시 해보게 된다.
그러므로 자식이 자라나서 성인이 되었지만 남의 입장을 헤아릴 줄도 모르고 아랫사람을 하대하면서도 올바른 경우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짓을 하게 되어서 사람들의 한탄을 받게 되어서 결국에는 그 부모의 얼굴마저 부끄럽게 만들어버리면, 그것이야 말로 부모의 입장에서는 세상살이에 실패했다는 최고로 쪽 팔리기 짝이 없는 인생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