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kr-wellness와 kr-psychology를 빙자한 한풀이.
5회에 걸친 수용전념 시리즈를 연재하며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가치를 향해 전념해야 한다고 목놓아 외쳤지만, 막상 그것이 나의 일이 되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이틀 연속으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나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어디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곳도 없어 비슷한 처지의 동지들에게 한풀이를 해보지만 그리 속이 나아지진 않는다. 왜냐하면 문제는 결국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절망감, 공허감, 분노가 뒤섞여있다. 감정을 분리할 수 있는 능력은 축복받은 능력이다. 나는 그런 능력이 많지 않아 정서가 혼재되어있다. 사실 이렇게 내 감정을 들여다 보는 것도 처음이다. 이녀석들을 하나씩 떼어내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떼어내려고 마음 먹으니 서로의 티끌들이 묻어있긴 하지만 어설프게나마 떨어져 범주화가 된다.
절망감, 공허감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현실로부터 기인한다. 인간은 자연재해와 같은 범접할 수 없는 현상 앞에서 경이를 느끼기도 하지만 절망을 느끼기도 한다. 한편, 대자연과 같이 범접할 수 없는 것은 또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 싶은 마음이 분노로 나타난다. 왜 이러고 있어야하지? 다 뒤엎고 싶다. 하지만 이 마음 또한 성취될 수 없으니 이는 다시 우울감으로 이행된다.
또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솟아난다. 이제 난 어떡하지? 큰일난 것은 아닐까? 두렵다... 걱정된다...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이제 내 감정은 마모되어 정서적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로지 사고로서 이런 단어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이것은 썩 좋지 않다. 차분하지 않아야할 땐 차분하지 않아야 한다. 감정이 느껴질 땐 감정을 느껴야 한다.
조금 감정을 느껴본다. 절망감, 공허감, 분노를 어루만지니 조금씩 사그라든다. 좁혀진 미간이 펴지고 숨이 차분해진다. 이것이 수용인가보다. 결국 일은 벌어졌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주어진 현실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받아들이고 내 가치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다.
오늘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