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있는 묵자는 춘추전국시대 겸애를 강조한 사상가. 끝. 그게 다였다.
그런데 오디오 강의를 들으며 집으로 오다가 강신주 교수의 묵자강의를 들었는데.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생각한 바를 실천하기 위해 전신을 던지는 그들의 모습에서 인간적 감동을 느꼈다. 나는 다음날 도서관에서 묵자를 빌려서 읽었다.
그들의 실천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장자와 맹자의 평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장자는 묵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살아서는 죽도록 일만 하고, 죽어서는 간소한 장례로 박대하니 그들의 도가 너무나 각박하다."
춘추전국시대 대부분의 사상을 맹렬히 비판했던 맹자도 묵가는 천하의 평화를 위해 평생 힘썼다고 칭찬했다.
묵자는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의 근원이 서로 차별하여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시대적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겸애. 즉 보편적 사랑을 실천할 것을 설파한다.
그 결과로써 묵자는 침략전쟁을 맹렬히 비판했는데. 그 실천들 중에 초나라의 전쟁을 막은 일화는 감동과 슬픔이 공존한다.
침략전쟁을 반대한 묵자가 초나라 신하와 왕을 설득하는 장면은 무모하다는 생각을 덮을만큼 큰 인상을 남긴다.
묵자는 초나라 왕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부자가 거지의 것을 뺐는 것은 도적이다. 지금 강대국인 초가 약소국인 송을 치는 것은 도적질이다... 고로 이는 의롭지 못한 것이다.
나는 섬뜩하면서도 감탄이 나왔다. 왕 앞에서 도적질이라고 직언을 할 수 있다니... 더 대단한 것은 다음이다.
초나라 왕은 전쟁명분에 밀리자 핑계를 댄다. 그 동안 내 부하가 송을 치기 위해 준비한 노고를 보아서라도 송을 취하겠다고 하자. 묵자는 그 자리에서 war game을 통해 초는 송을 칠 수 없음을 증명하며, 나를 죽이더라도 나보다 훌륭한 제자들이 이미 송으로 떠났으니 초는 송을 취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묵자의 말을 들은 초나라 왕은 송나라 정벌의 의지를 접는다.
나는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묵자에게 빠졌다.
그러나 묵자에게는 늘 슬픔도 함께 따라다닌다. 송나라를 지키러간 묵자의 제자들을 보고 송나라는 초나라 군사로 착각을 한다.
그리고 성문을 닫은 송나라에 의해 묵자의 제자들은 성 밖에서 비를 맞으며 어쩔 줄 몰라했다고 한다. 이것이 묵자가 가는 길에 펼쳐진 숙명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참 슬펐다.
간단한 일화를 하나 더 소개하면 약소국이 침략당하는 것을 돕던 묵가의 무리들이 이대로 가면 우리 모두 죽으니 둘을 거자(묵가는 묵자의 사상을 함께 공유한 집단으로 함께 생활했는데 거자는 그 집단의 중심자이다. 묵자는 최초의 거자였다.)로 지정하여 성 밖으로 보내자고 결정하고 둘을 지정하고 도망가게 했다. 그러나 거자로 지정된 그 둘은 다시 돌아와 함께 싸웠다는 일화도 있다.
묵가라는 공동체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떤 이는 묵가의 이런 실천은 더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무모한 도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결과론적으로 춘추전국시대에는 널리 퍼졌던 묵가의 사상은 이후 대가 끊어졌고, 묵자가 비판한 유가는 그 후로도 이어졌으니까.
그러나 21세기에 묵가는 중국에서 다시 부각되고 있다. 특히 그들의 실용주의적 학문관이 집중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묵가는 다시 태어나고 있다.
다만 나는 묵가의 실용주의적 학문관 보다 행동하는 학문관에 더 큰 가치를 두었다. 그래서 그들이 주장한 다양한 분야의 이론들보다 실천했던 일화들을 적었다.
나는 생각한대로 행동하고 있는가? 우리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행동함에 있어 스스로 합리화시키거나 타협하지는 않는가?
늘 천하를 누비며 전쟁을 막는라 몸에 있는 털이 다 달았다는 묵자의 모습을 떠올리면 우리는 참 부끄러운 것들이 많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나를 부끄럽게 했던 실천가. 묵자에게 감사하다.
- "묵자읽기"에서 일부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