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묵언에 대해서
회의주의
니힐리즘(nihilism)은 허무주의를 이르는 말로 어원은 라틴어의 ‘무(無)’를 의미하는 니힐(nihil)이다.
니힐리즘의 원래 의미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無(무)라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이미 그리스의 소피스트 고르기아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사람을 니힐리스트라고 하였다.
그러나 현대에서 니힐리즘이란 절대적인 진리, 도덕, 가치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 그러한 입장에 따른 생활태도 등을 총칭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회의주의나 상대주의도일종의 니힐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사회의 진보란 모든 사회적 제도를 해소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는 무정부주의도 니힐리즘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허무주의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고르기아스의 회의주의
고르기아스는 2500년 전 그리스 아테네에서 활동하던 소피스트의 한 명입니다. 고향은 시칠리아라고 합니다.
플라톤의 책에 고르기아스와 프라타고라스가 등장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의 대가들을 자신의 질문으로 깨버립니다.
절대적 회의주의에 빠지면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해도 소용이 없고.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겠고 존재한다고 해도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해서 서로 다르고 다르게 인식된 것을 말과 지식의 한계로 전달하거나 이해시키기도 힘듭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야 하고 살면서 의미를 부여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과 동시대를 살았습니다. 말로써 먹고 사는 수사학을 구사하는 소피스트들을 소크라테스는 무척 싫어 했나 봅니다. 플라톤의 책에도 등장하고 그렇지만 말장난을 싫어했던 소크라테스도 결국은 말실수로 독배를 마시게 됩니다.
공자님도 말 잘하는 사람을 많이 경계하셨습니다. '말 잘하는 것을 어디다 사용하겠느냐고' 그렇지만 '말로 천냥 빚을 감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회의주의도 피해야 하지만 무엇이던 절대적이 되는 순간 자신에게는 비수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극은 피해야 합니다. 양쪽 끝은 극단이 됩니다. 그렇지만 아주 중간도 피해야 합니다. 아주 중간도 극단이 됩니다. 극중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절대적도 안되지만 극중이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절대주의도 회의주의도 피하자
그리스에서는 논리학이 발전했습니다. 말도 생각도 논리적으로 해야 했고 그것에서 시작해서 플라톤은 절대적인 이데아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데아를 실천하기 위해서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고 믿게 되였습니다. 절대적인 진리는 종교화하고 교조화 하게 됩니다.
절대적인 진리의 부조리가 선을 넘자 종교개혁을 거쳐 경험주의와 합리적 이성주의가 발전하게 됩니다. 합리적 이성주의가 한계를 나타낸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쳐 포스트 모더니즘이 발생합니다.
결국은 아무리 논리적이고 절대적이고 합리적 이성주의라도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고르기아스의 회의주의에 빠지면 안 된다는 포스트 모더니즘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잘못하면 극중이 되기도 합니다. 아무 것도 하기 힘든. 그래도 해야 한다는 포스트 모더니즘.
존재하는 것을 증명하기는 힘들지만 불확실성의 학문인 퀀텀물리학에 의하면 모든 것은 확률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존재합니다.
서로 인식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인식학도 발전할 수 있지만 우리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공통분모를 찾아낼 수 있고,
아무리 언어의 한계와 지식.문화의 차이로 전달하기도 힘들고 이해 시키기도 힘들지만 감동, 공감이라는 느낌으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고 이해시킵니다. 이심전심이라는 말도 있고.
하기 힘든 것들
우리가 자주 하는 것 잘난 척 중에 지적질 만큼 안 좋은 조언. 충고가 있습니다. 하기 힘들기도 하고 잘해봐야 본전이지만 우리들은 아주 자주 합니다.
서로 인식하는 것이 다르고 인식했다고 해도 전달하기도 힘든데 우리는 그 힘든 조언.충고를 하고 싶어합니다. 그 하기 힘든 것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고 싶어함인데 듣는 사람들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존재감을 들어내며 '너나 잘하라고' 말합니다.
알아들었다고 해도 기분은 더럽고 다른 사람의 진실을 실천하기도 힘들고 지금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조언이나 충고가 아니고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해심과 공감능력인데. IQ 대신 EQ와 CQ가 필요한데.
마음과 몸이 상하고 다쳐서 치료와 위안이 필요한데 비수를 던지며 조언.충고질을 한다면 누가 좋을까요?
아무리 잘해도 본전인 조언질.충고질을 멈추고 싶지만 자신의 존재감을 숨길 수 없으니 우리들의 잘난 척은 언제 멈출까요?
멈출 수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의 존재감을 표시하면서 논쟁하면서 사는 것이 삶이기도 하고....
조언을 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고 그냥 같이 옆에 말 줄이고 존재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