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말은 틀렸다.
불확실성의 세계는 두려움을 넘어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넘지 못하더라도, 두려움 속에 살고 늘 그것에 갇혀있다해도,
세상은 단 한번도 확실했던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두려움 속에 갇혀 살아야만 그 삶이 우리에게 명확하게 보이는 듯 했다.
그래도 가끔은, 그 두려움을 견디지 못할 때가 있다.
잠을 설쳤다.
다시 한번 많은 것이 변해야하는 때가 왔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 때가 내게 강제로 주어졌던 적은 없었다.
내가 그 모든 때를 불렀고, 그 때들은 곧 결정해야하는 때였다.
왜 나는 인생에 있어서 굵직할 만한 선택을 이리도 자주 해야하나,
하고 불평도 해봤지만, 그건 순전히 나 때문이다.
내가 확실하고 안정적인 삶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퍽 살만한 삶이었을텐데 말이다.
고민이 길어지다보니 나름 꽤 괜찮은 답을 찾아가는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뭘 두려워했었는지가,
내가 무엇을 좇으려 했었는지가 조금은 보이는 것 같다.
확실성의 세계에 머무를 때 얻을 수 있는 것을 잃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정확히는 '잃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잃을지도 모르는 것'이.
다시 영점을 맞춰야하는 때가 온 것 같다.
세상도 변했고, 나도 변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영점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없다.
단 한번의 격발로 영점을 맞출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몇 번 더 방아쇠를 당겨야할 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순간에도
내게 응원을 보내는 이들이 항상 곁에 있다는 것.
나보다 나를 더 기대하고, 나보다 나를 더 신뢰하는,
그런 따뜻한 손들이 나를 떠밀어주고 있다는 것.
두려움은 마주하는 순간에라야 비로소 두렵지 않게 된다.
불확실성의 세계로 향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두려움을 기뻐하기를.
마침내는 그 두려움으로 뛰어드는 또 다른 이를 지탱할 손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