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들은 대개 방랑자들이다. 방랑은 그리움을 나타내는 상이다. 잃어버린 모성을 찾고 있는 상이다.
<융 기본저작집 8권, 영웅과 어머니 원형>
마음뿐이긴 했어도 비박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가끔 산행에서 만나는 그들을 보면 경외감마저 느꼈었다. 비박이란 사실 우리말로 하면 한뎃 잠이다.
결국 50 초반에 캠핑을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처음부터 장비도 알파인용으로만 준비했었다. 60리터 배낭에 차곡차곡 장비들을 쌓아넣고는 하지만 캠핑장에서의 캠핑. 흉내만 내놓고 뭐라도 느낀 것마냥 할 순 없다. 지금은 그마저도 그만 뒀다. 아침이면 온 몸의 관절들이 비명을 질러댔고 산행은 고사하고 텐트를 걷고 장비를 정리하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그렇게 밤을 홀로 보냈던 시간들이 그립다. 혼자 있음의 편안함이 그립다. 일몰은 점차 칠흙같은 어둠으로 바뀌었고 화로대의 화염을 바라보며 마치 몇십만년 전 어느날로 돌아간듯 황홀했다. 혹은 별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면 부드러운 벨벳에 감싸인듯 따뜻했다. 그렇게 한데에서 혼자임에 빠졌었다. 불편한 잠자리를 미명 가운데 맞고 일출을 바라봤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설레이는 마음으로 몇 시간씩을 달렸었다.
정해진 곳 없이 천천히 혼자 걸으면 편안했다. 힘겹게 고개를 올라서 능선을 걸을 때의 안온함이란. 발 밑의 포근한 풀, 얼굴에 닿는 부드러운 바람, 향기마저 고소했다.
호모 노마드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베두인에 매력을 느낀다.
어릴적 배가본드란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알 수 없는 끌림이 있었다. 대학 때는 목로주점을 소리높여 많이도 불렀다. 지금 생각하니 사막으로 가자는 노랫말이 배가본드를 듣던 때의 느낌과 비슷했던 것같다. 유독 뽕짝 중엔 유정천리에 끌린다.
사진을 거의 찍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드는 때는 유독 일몰과 일출 때다. 특히 일몰의 태양은 아련한 회한을 품고 그래도 그리워하며 방랑하는 내 모습이다.
영웅은 태양이란다. 수평선 아래서 바다의 배를 가르고 떠올라선 다시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 그리고 소멸했다간 새로운 생명으로 수태되어 다시 바다의 배를 가른다.
아니면 대지의 배를 가르고 떠올랐다가 다시금 대지의 품 속으로 사라진다.
끝 없는 방랑이다. 결코 채워질 수 없는 허텃함을 안고 잃어버린 안온함을 그리워하는.
바다는, 대지는 어머니이고 아내이고 딸이다. 아니 세상 모든 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