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old-fashioned입니다. 부인하고 싶었지만 이곳에선 별 수가 없군요. 단지 새로운 지식의 섭취만 게으른게 아니고 나름의 쓸데 없는 고집도 있어 제가 적는 것들은 진실과 적잖이 다를 수 있습니다. 단지 제 생각입니다.
상처 이야기를 하고싶어집니다.
적지 않은 경우, 어린 시절 겪은 상처는 대단히 유의미합니다.
합리적 혹은 추상적 사고가 가능해지는 사춘기 이전의 유년기 상처는 더욱 그렇습니다. 특히 제 관심사인 신경증의 경우에는요. 인지가 발달해가는 중이어서, 혹은 성격을 만들어 가는 도중이어서 그런지 상처와 관련된 경험들은 주어진 상황에 대한 적절한 인지나 대처전략을 왜곡시킵니다.
물론 유아기의 상처는 의미가 더 커서 신경증의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로선 감당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겐 그런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신경증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 보여주는 증상들은, 특히나 성인이 되고도 상당 기간 부침을 보이는 증상들은 주의깊게 살피지 않으면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뒤죽박죽입니다.
당연하게도 증상만 나열하는 '우울증, 불안증, 강박증, 불면증' 등의 진단만으론 설명도, 이해도 어렵습니다.
결국 그 증상을 만들어내는 토대, 흔히 성격, 혹은 인격이라고 하는 것, 저는 '상황에 따라 반복되는 반응 패턴'이라고 하고싶은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것도 가만 보면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된 유형만으론 누군가를 어떤 구획 안에 가둘 가능성이 높기에 유형에 매달리기보다는 그분을 있는 그대로 볼 필요가 높습니다. 물론 제가 그걸 잘 하고 있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알고나선 버리란 말이 와닿습니다.
증상의 토대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고려해야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첫째는 타고난 기질적 특성입니다.
두번째는 상처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가입니다. 그것도 상처받은 사건의 구체성은 물론이고 그때 느꼈던 감정이 설명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당시 뿐 아니라 사건 전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의 환경도 설명돼야 합니다. 성인이 된 후의 환경도 물론 의미가 없진 않지만 그것은 사실 현재에 이미 반복되고 있습니다. 언제나 초점은 현재에 있으므로 현재를 부연하는 정도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것들이 충분히 고려되면 상처가 그분의 삶을 어떻게 관통해 왔는지가 이해됩니다.
물론 처음에는 대강의 얼개를 갖고 시작하고 함께 그 탐구를 진행하면서 얼개는 점차 구체화됩니다.
어쩌면 시작이 반일 수 있습니다. 닫혀있는 마음이 문제였는데 그 문을 열기로 마음 먹었으니 이미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과정은 순탄치 않습니다. 순탄치 않음을 결정하는 것도 역시 이미 적은 세 가지 요인들입니다. 지속적으로 상처의 기억은 소환됩니다. 그 세 가지로 만들어진 패턴은 끊임 없이 다양한 형태의 저항을 불러일으킵니다. 그 분들 탓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해서 저항은 매번 중요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것을 어디서는 'bio-psycho-social'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접근하고 풀어가는 것을 'psychodynamic'이라고 합니다.
제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이것입니다. 삶을 관통하는 상처.
그렇게 보면 누구의 삶도 서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백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얘기들입니다.
세상에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