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부분이고 마지막입니다.
저자의 동의 없이 번역해서 올렸습니다. 전문가나 저자의 검증 없이 한 번역인데다 과문한 탓에 조심스럽습니다. 처음에는 관심 있는 글이었고 몇 문단이라고 오해해서 읽는 김에 함께 공유해도 좋을 것같아 올려보자고 한 것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지적할 점이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많이 배웠습니다. 부족한 제 글보다 더욱 가치 있다(제대로 된 번역이라면)고 생각됩니다. 비록 불교를 위시한 동양의 종교 뿐 아니라 수도원 전통을 통해 이어져오는 가톨릭의 관상기도나 다수 종교의 신비주의에서도 마음을 챙겨 알아차리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교리를 걷어내고 현대인들이 납득 가능하도록 풀어 써주신 글이라는 생각입니다. 마음의 어려움에 관심을 갖는 현대정신의학도 이미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의 중요성을 깨닫고 논의와 채용이 활발합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명상의학회가 발족되어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모쪼록 kr-mindfulness 태그가 이와 같은 삶의 태도나 자세를 고양하는데 의미있어지길 기대하고 저도 부족하나마 한 발 담궈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 https://aeon.co/essays/nirvana-can-seem-an-exotic-metaphysical-idea-until-you-look-closer
열반이란 무엇인가?
윤회로부터 자유로와진다는 것이 불교를 믿지 않은 이들에겐 무의미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반은 또한 깊은 심리학적 목표이기도 합니다.
Robert Wright
is visiting professor of science and religion at Union Theological Seminary. He is the author of The Moral Animal (1994), Nonzero (1999), The Evolution of God (2009), and, most recently, Why Buddhism is True (2017).
경험적 이해의 밑바탕이면서 동시에 동반하는 것은 불교 철학의 한 부분인 보다 추상적인 이해입니다. 마음챙김 명상이 실질적으로 진보하려면 여러분은 반드시 느낌이 본래의 장치로만 남아있을 때 그것이 지각, 사고,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 기제를 알아야 하고 또 처음으로 그 느낌을 일어나게 하는 주변의 요인들은 무엇인지 더 많이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무엇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는 것이므로 불교도 입장의 깨달음은 서구 과학의 계몽주의와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고정관념 가운데 있습니다. 마음챙김 명상은 흔히 따뜻하지만 모호하고 심지어 비합리적이라고 생각들을 합니다. '느낌과의 접촉을 유지'하되 '판단하지 말라'고 합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런 것들을 포함합니다. 명상은 분노, 사랑, 슬픔, 기쁨 같은 느낌을 경험하되 과거에는 전혀 경험해 보지 않은 방식으로, 그 느낌의 결을 보고 그 결을 느끼는, 새로운 감수성으로 경험하도록 합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어떤 의미에서 판단을 하지 않기 때문인데, 즉 여러분이 여러분의 느낌을 습관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으로 이름 붙이고 도망가거나 빠져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여러분은 그 느낌 속에서 여러분을 잃어버리지 않고 가까이 머무를 수 있고 실제 느껴지는 대로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됩니다.
여전히 여러분은 합리적 기능들을 포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 이제 어느 방향이 올바른 지시등인지 현명하게 결정할 수 있는 합리적 분석의 대상으로 여러분의 느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판단하지 않음'의 궁극적인 의미는 느낌으로 하여금 여러분이 무언가를 판단하도록 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느낌과 접촉하고 있음'의 궁극적인 의미는 느낌으로 말미암아 밀려가는 것을 염두에 두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세상에 대한 여러분의 반응이 가능한한 가장 명료한 관점으로부터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노력 전체의 밑바탕에는 마음이 작동하는 고도의 기계적 개념이 깔려있습니다. 즉 기계의 작동에 대해 조밀하게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기존의 프로그램을 파괴하여 다가오는 원인, 즉 조건에 대한 반응을 근본적으로 바꾸는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는 것이 엄밀한 의미에서 '무위'로 가는 것도 아니며 말그대로 원인과 그로 인한 결과의 장을 탈출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비행기는 말 그대로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비행기는 여전히 비행합니다.
위 글은 Simon & Schuster에 의해 Robert Wright의 ‘Why Buddhism Is True’(2017)로부터 발췌하여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