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의 일
사람의 일 중 가장 중한 일
부엌의 일이 아니면 대체 무얼까요?
부엌의 일이라 함은 호모 하빌리스 이래
세상에 나가 먹을거리를 구해오는 일
그러니까 돈이라는 것을 버는 일
많이, 자주 이걸 구해오면 아름다운 배필도 만났으니
부엌의 일이란 또한 남녀간의 일
개간이라는 것을 시작한 이래
부엌의 일이란 농의 일, 농지의 일
도마에 두부와 버섯, 양파와 미나리를 올릴 때
우리는 실은 땅 속에 코를 박는 것입니다
부엌의 일이란 뭐니뭐니해도
불과 칼을 다루는 일
침팬지나 낙타나 곰이 보면 깜짝 놀랄 인류의 결정적인 무기로
우리 목숨을 살려줄 제물들을 싹둑싹둑 요리하는 곳
그러니 부엌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
목숨을 생각하게 되는 곳
신상이 있어야 하는 가정의 자리는 바로 부엌이랍니다.
이족 보행을 배웠던 우리가
배려심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집단 학습했던 곳
부엌과 식탁이 아니면 어디인가요?
요리란, 러시아형식주의자들이 말한 감각의 지연과도 같은 욕망의 지연-삶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이곳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테지요.
부엌의 일이란 주린 배를 채우며
주린 배를 채우는 미학을 더불어 익히는 일
육체와 정신이라는 정신 나간 이분법을 뛰어넘는 일
그리고 가자미 한 마리, 동치미 한 접시에서
살았던 시절을 다시 사는 일
다시 어린이 되는 일이기도 하지요
부엌의 일이란 지긋지긋한 설겆이의 일
하지만 아시는지? 다도란 설겆이의 도임을
설겆이만 잘 하면 백팔배는 생략해도 됩니다
아 부엌의 일이 이렇게 많았던가요?
부엌은 하루로 들어가고, 하루를 닫는 문
그러나 실은 부엌이야말로 우리를 응시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