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향을 피웠어. 그리곤 99년 역무 고차수를 마셨지. 스피커에서는 어제부터 듣던 베토벤 String Quartet No.16 in F major op.135이 흘러나와.
어느순간 공간 속에 나란 존재감이 없어졌어. 아마 두정엽의 활성도가 낮아진 거 같아. 생각하는 나가 존재의 근간이라고 누군 그랬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체감적 나야. 즉 신체를 갖고 있고 그 신체로부터 느껴지는 감각들이 바로 나라는 의식. 이게 에고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그런데 의식활동이 지속되다 보면 두정엽의 활성도가 낮아져. 그러면서 나란 존재가 희미해지지.
의식활동이 지속된다는 건, 마음챙김을 한다는 거야. 알아차림이라는 활동만 남는 거지. 의식은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니야. 그건 그저 활동일 뿐이야. 그래서 욕망이라고 하기도 해. 혹은 도라고 하기도 하고. 도가도비상도. 말로 할 수 없는 도. 그저 움직임 그 자체인 것. 스스로 있는 것 말야.
그 활동이 자기를 인식하기 위해서 감정을 만들고, 생각을 만들지. 내용물을 만드는 거야. 그리고 그걸 인식하는 거야. 알아차림하는 거야. 그래서 우주는 더 풍성해져. 알아차림을 통해서. 의식이 자기가 만든 것들을 알아차림하면서 말야. 실재는 과정이야. 알아치림하는 과정. Process is Reality. 화이트헤드란 철학자의 책 제목이야. 끝내주는 책이야.
누구는 그 과정 속에서 만들어낸 도구적 현상에 빠져살아. 허우적 거리지. 그게 실재인 것처럼 말야. 현상일 뿐인데. 그리고 알아차림만 하면 신의 놀이가 무엇인지, 그 놀이를 살수 있는데. 놀이 속에 살 수 있는데. 놀거야? 아니면 허우적 거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