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뇌가 발달한 것은, 사회를 이뤘기 때문입니다. 즉 관계를 이뤘기 때문에 뇌가 발달한 것이라 합니다.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공동으로 해결하는 과정 중에서 뇌가 발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공동으로 생활하기 위해서 추상적인 가치들을 실제화하는데 성공한 것도 있겠죠.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가치가 가슴이 두근거리는 실제가 되도록 뇌는 발달했습니다. 그게 집단의 생존과 번식에 더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추상적 가치가 감정적 동력을 얻게 되거나 아니, 감정적 동기들이 추상적 가치로 표현되는 건 사회의 네트워크 구성때문이었습니다.
사회 뇌가 발달하다 보니 좋기도 한데, 이게 부작용도 많습니다. 애초에 집단의 생존과 번식에 필요하기 때문에 사회 뇌가 발달했기 떄문입니다. 따라서 개체의 행복보다는 사회 구성원들의 평판에 더 민감하게 됩니다. 평판이라는 추상적 언설들이 구체적으로 개인 신체마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평판에 훼손이 되면 몸살 걸리듯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많이 노력하게 만듦니다. 그게 개체 개인의 행복여부와는 상관없이 말입니다. 사실은 그런 것들은 가상화페처럼 추상적 가치만 갖고 있습니다. 언어 뿐인데 그것들에 감정적 가치부여를 하게 됩니다. 희소성을 만드는 거죠. 생물적 측면에서는 전혀 가치 없는.
그렇다고 사회를 떠나 개체가 살 수는 없습니다. 물리적으로 떠난다고 해도, 여전히 그 상징체계에 살기 때문입니다. 그 언어 속에 살기 때문에 인간은 여전히 사회를 떠나 살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균형은 있습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과 자신이 삶의 경게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어떤 이유가 있어도 그게 본질적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NO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염증반응이 생기지 않습니다. 몸에 염증반응이 있다는 건 거절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신체에 염증반응을 혹시 갖고 있지 않나요. 그러면 경계를 다시 설정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