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 공감에서 따스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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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남의 고성인 바이샤촌을 옥룡설산이 조망하고 있습니다]

공감이 필요하단 말이 종종 나옵니다. 그만큼 애착관계가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누군가 내 마음을 내 감정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기에는 너무 바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배려도 힘듧니다. 힐링상품이 유행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감정노동자란 말도 나옵니다.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그 사람애개 동조하다 보면 자기 감정도 어느새 전염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하고 같이 슬퍼하고 같이 분노합니다. 같이 기뻐하고 같이 불안해 합니다. 그 사람과 자신의 경계는 사라지고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그 하나됨은 기쁨을 동반하기 보다는, 만족스럽기 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기생하는 모습이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사람 관계, 정말 어렵습니다. 공감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게 사람 관계입니다. 오죽 했으면 이런 복잡한 사람관계를 다루기 위해, 에너지 폭식가인 뇌가 발달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공감이 답이 아닌 걸 체감적으로 알겠습니다. 찾아보니 그런 의견을 가진 분들이 좀 있더군요. 그분들이 제시하는 건, 공감이 아니라 [조망수용]이라고 합니다. 조망수용은 공감과 다릅니다. 공감은 단순히 정서적 이해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조망수용은 다른 사람의 감정뿐 아니라 그렇게 감정이 생겨난 처지나 상황등을 이해합니다. 동시에 자기 자신의 감정이나 처지도 이해하는 관점을 말합니다. 그런 프로세스는 뇌의 우측 측두두정연접에서 일어난다고도 합니다.

말하자면 상대와 나의 감정과 처지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입니다. 누구의 입장에 빠지지도 그렇다고 벗어나지도 않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면서 가까이에서 감정을 느낍니다. 조망수용능력이 높은 사람인 경우에 자기 자제력을 잃고 충동적으로 상대를 대하지도 않습니다. 따스한 온기를 갖고 자신과 상대를 친근하게 대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은 仁 (어질 인)입니다. 인은 자기와 타인이 이어져 있음에서 나옵니다. 이어져 있다는 것을 체감할 때 조망하고 자신과 타인에게 따스함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자신과 타인의 감정과 처지를 따스한 포지션에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마음챙김에서는 기존의 정의론과 조금 다른 정의를 말합니다. 기존의 정의는 분노에 기반하거나 불안에 기반합니다. 분노에 기반한다는 것은 최후통첩게임에서 보듯이, 정당하지 못한 분배에 대해서는 처벌을 하는 걸 말합니다. 갑질에 대해 처벌하는 동력입니다. 진화로 습득된 분노에 기반한 정의감각입니다. 그 처벌비용이 많이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공동체를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불안에 근거한 정의입니다. 사회 안전망에 대한 우리의 요구가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입니다. 그 노력의 이면에는 불안전 애착에 따른 손실회피 심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챙김에서 도출될 수 있는 정의는 제3의 정의입니다. 그건 존재론적 정의입니다. 존재적으로 보면 당신과 내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말그대로 존재로 체감하는 것입니다. 그 체감에 근거하며 仁으로 매개되는 게 마음챙김에서 도출되는 정의입니다.

오늘 하루 편안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고통에서 벗어나 당신의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소원합니다.

[마음챙김] 공감에서 따스함으로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