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기운은 위로 올라오는데, 황사로 뿌옇기만 합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정말 힘듧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힘들고,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도, 가족에게 착한 사람이 되는 것도 만만한게 없습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추진하는 일도 어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와서 흐트러질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감정 표현이 서투릅니다. 아이 메시지로 표현하라고 하는데 영 어색하기만 합니다.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우리 몸을 아프게 합니다. 세상에는 마음과 몸이 소소하게 아픈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들어가면 그것은 감정때문이 아닙니다.
그 감정은 하나의 지표일 뿐입니다. 물론 우리 몸이 그 감정의 다양한 지표를 갖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선이 외부로 쏠린 탓에 자기를 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외부에 휘둘려서 중심中心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의식의 언저리에 남아 있는 감정의 흔적들이 있습니다. 그 감정은 의식으로 표현되지 못하고 몸으로 표현됩니다. 또는 하루동안 긴장했던 의식이 쉬는 동안 그 틈을 타고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실수로, 또는 꿈으로.
그렇다고 쉬이 힐링에 취하기를 권하고 싶진 않습니다. 힐링은 증상만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증요법이기 때문입니다. 그 것들이 만들어 내는 것을 소비하다 보면 감정이 주는 지혜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현대인들은 불안한 애착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이를 낳고도 일을 해야 하는 사회 구조가, 공동체가 아니라 부부가 아이를 키우게 하는 사회구조가 아쉽습니다. 그런 구조에서는 불안한 애착관계를 형성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애착관계는 자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기 아이에게 이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쉽게 소비할 수 있는 힐링이 더 와 닿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리) 애착관계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상품들을 소비하라는 유혹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분을 풀고 나면 헛헛합니다. 그것들은 뿌리를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미묘한 감정 뿌리에는 욕동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반인간화된 욕동 아래는 우주적 리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힘들이 흐르는 길을 현대에서는 좁디 좁은 자아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자아는 힘듧니다. 그 힘들을 다 소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구조적인 문제를 제대로 대면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욕동에 직면해야 합니다. 그것을 성찰이라 합니다.
[소양상화少陽相火와 소음군화少陰君火]
소양상화는 빛입니다. 위로 올라가며 밝게 비추는 빛입니다. 상화는 몸에서 필요할 때 에너지를 쓰는 걸 말합니다. 요구될 때 마다 몸의 각 부분에 피가 쏠리는 걸 연상하면 쉽습니다.
반면 소음군화은 열입니다. 그러나 이 열은 물의 기운을 동반한 열입니다. 물기를 머금은 불입니다. 자기의 상극인 물까지 통제할 수 있는 불입니다. 수승화강의 원리입니다.
소양상화는 힐링입니다. 반면 소음군화는 성찰입니다. 힐링이 빠르고 쉽게 효과가 나는 듯 합니다. 그러나 뿌리를 건드리진 못합니다. 뿌리까지 건드리기 위해선 물까지 통제하는 열이 필요합니다. 그게 소음군화이며 수승화강입니다. 군화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소음, 즉 물이 필요합니다. 물은 족소음신경이고 불은 수소음심경입니다. 즉 심장이 온 몸에 피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신장의 기운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쉽게 오르기 보다 쉽게 힐링하는 것보다, 땅을 딛고 있는 발로부터 오는 힘과
어울어져야 불은 임금의 불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