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챙김, 마음챙김] 몸이 있다는 건

Words
281
Reading
2 min
Listen
Play
8y

다운로드 (1).jpeg

우리는 일상적으로 주어진 세계 속에서 판단하고, 감정을 느낍니다. 몸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앎에 대한 중독은 사람을 편벽되게 만듦니다. 몸의 움직임이 편벽되어 일상 쓰는 방식으로 씁니다. 거기에는 그 시대의 가치와, 그 시대의 아픔이 개인화되어 들어 있습니다. 개인화되어 있다는 것은 신체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해서 우리는 몸을 통하지 않고서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고통이라는 건, 주어진 세계관 속에서 주어진 판단과 감정을 재생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과거에 비추어 투사를 끊임없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몸에 축척된 습들을 훈련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꺠달음enligtment 가 공공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누구나에게 가능한 공공재입니다. 즉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어떤 누가 사용해도 다른 사람도 역시 사용가능한 공공의 자원입니다. 깨달음이라는 게 어떤 신비한 능력이 아니라, 처신을 잘 하는 게 아닐까요.

즉 자기에게 주어진 세계관과 그 세계관으로부터 설정된 판단,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입니다. 자유롭다는 건, 그것들이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으로 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되 그 흐름을 보는 것입니다.

팔의 어느 부분이 간지럽습니다. 그 간지러움을 그냥 긁어서 해소할 수 있지만, 가만히 그 증상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의 느낌이었던 것이 점차 그 느낌의 질이 다양하고 폭이 다양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따끔거리기도 하고 달콤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다고 긁고 싶은 충동도 올라옵니다. 그 충동에 따라가기 보다 그 충동을 넉넉하게 느낍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증상이 사라집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신체, 그리고 그 신체가 만들어 내는 느낌을 묶는 감정, 생각 등등. 또는 과거의 어떤 일로 인한 상처의 색체를 지닌 투사. 이것들은 불편한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길잡이가 될 수 있습니다.

“플롯을 먼저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나를 두렵게 합니다. 그보다는 과정 안에 뭔가 있다는 것이 나를 더 흥분시키죠. 내가 원하는 것은 이야기를 찾기보다 디테일을 첨가하고 모아서 퍼즐이나 그 이야기를 구성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 짐 자무시


Sponsored ( Powered by dclick )

dclick-imag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