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책> "공정하지 않다" 를 읽고

sanha8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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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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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하지 않다 - <공정하지 않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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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얘기하지만 나에게는 괴벽이 있다. 주말에 한 번 가는 목욕탕에 책을 가지고 가는 것이다. 뜨끈한 물에 허리까지 담그고 땀 뻘뻘 흘리며 책을 본다. 책에 물은 좀 튀고 지저분해지지만 그때만큼 집중이 잘 되는 때도 없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 집중 시간이 길진 못하다. 그런데 가끔 무슨 복싱 선수 체중 감량하듯 땀을 쪽 빼고 나오게 만드는 책들이 있다. <공정하지 않다> (박원익, 조윤호 저 , 지와인)도 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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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는 ‘90년대생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다. 즉 2019년 현재 20대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헤치고 열거하고 가다듬고 추려서 내미는 책들이다. 여기서 바라는 것은 물질이나 제도라기보다는 기성세대 특히 60년대생쯤들이 내비치는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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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툭하면 튀어나오려들지만 기를 쓰고 입막음을 하고, 그래서 절대 안쓰지만 혀 끝에서는 계속 맴도는 표현이 바로 요즘 유명한 ‘라떼는 말이야’다. 나 때는 어땠고 저땠고 하는 말 자체가 나 나이 먹었다는 꼰대 인증이라는 것 잘 알고, 젊었을 때 어른들이 그 말할 때 얼마나 학을 떼었는지를 잘 기억하면서 내가 그럴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일종의 ‘자연스러운 충격’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해가 가는 불가사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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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나는 여러 번 무릎을 쳤다. (그래서 물 튀겨서 책 좀 적셨다) “아 그래 너희들 생각은 이렇겠구나. 아차 나는 왜 그걸 이해 못했을까. 이건 좀 아닌 것 같지만 그럴 수도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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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대 ‘남자’들에 대해 그랬다. 이 책은 엄밀하게 보자면 ‘90년대생 남자들’에 대한 분석인 듯하기 때문이다. 20대 남자라는 일반화 자체가 무리수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가끔 눈에 띄는 젊은 남자들에 대해 다소 의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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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이런 것. 메갈이고 워마드고 정상 범위를 넘어섰다는 데에는 동의하는데 걔들이 내뱉는 ‘한남’ 소리에 저렇게 바들거리며 흥분할까 같은. 그냥 웃어 넘기면 될 텐데. 아니 ‘충’자 붙이지 않으면 그저 ‘한국 남자’ 아닌가. 또 이런 질문 .... 병역 의무가 젊은 날의 단절로 다가서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왜 여자들더러 “너희들은 군대도 안가면서”를 주문처럼 외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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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20대는 제도적인 영역에서 성평등 가치가 공식화되고 남녀의 고정된 역할이 해체되는 과정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한편 이들이 남녀 가릴 것 없이 무제한적인 입시와 취업 경쟁에 시달리기 시작한 세대라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한 젊은 남성은 젠더 문제에 대해 부채감이 희미할 수 밖에 없다. 설령 부채감이 있다 해도 ‘62년생 김말자’라면 모를까 ‘82년생 김지영’으로는 여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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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20대의 끝자락이라면 2020년 기준 1991년 생이 될 텐데 이들은 드라마 <아들과 딸>을 못보았고 ‘대발이 아버지’보다는 ‘야동 순재’로 배우 이순재를 기억하는 세대일 것이고 “아들 공부시켜야 하니 딸 네가 희생해라.”는 스토리와는 아주 아주 거리가 멀 것이다. 그들이 코흘리개였던 90년대의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급변기였고 그들이 20대가 됐을 때 세상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물론 한 사회를 수십 년 규정해 온 가부장제의 틀이 쉽사리 유약해지기야 했으랴만, 적어도 그들은 70년생인 나의 ‘라 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세월을 살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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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나는 건조한 숫자 몇 개를 본다. 91년생이 태어나기 직전, 1990년의 성비불균형은 남자 116.1 대 여자 100으로 최악이었다. 미욱한 부모들이 숱한 ‘딸’들을 지워 버린 탓이다. 그런데 대학진학률 수치를 보면 2005년 이미 여학생이 남학생을 넘어서기 시작했고 2018년 현재 여학생 73.8퍼센트, 남학생 65.9퍼센트란다. 책을 읽다가 말고 아 나는 꼰대가 되었습니다 팻말을 들고 싶어지는 것이다. 세상은 변하였는데 내 머리 속은 그렇지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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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에서 나는 일부 20대 남자들이 군대 문제로 여자들도 군대 가라고 소리지르는 것을 그저 “쪼잔한 머스마들 군대 거부운동이라도 해라. (난 이 운동에 찬성하지 않는다) 니 여동생 군대 가라고 하고 싶냐.”면서 타박하고 있었다. ‘현역판정률이 91.5%(90년도에는 64.1%)’인 마당에, 그리고 취업 경쟁이 살인적을 넘어 살인류적으로 치열해진 마당에 2년의 단절이 무슨 의미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작가 왈, ‘20대 남성의 반발을 여성들이 그동안 당한 게 많아서 과격하게 반발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속 좁은 태도로 취급한 대다수 윗세대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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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던 ‘껍데기를 벗고’ 나니 많은 것이 읽혔다. 그리고 아울러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잘못돼 있다는 생각도 갖게 됐다. 특히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태도가 그랬다. 20대 남자들이 분노하는 지점에 대한 파악보다는 위에서 언급한 ‘속 좁은 태도’나 ‘가부장적 제도에서 못벗어난 모지리’ 낙인을 찍기 바빴고 변화한 세상을 수렴하기보다는 과거 자신이 겪었던 사회적 차별과 고통을 오늘에 되살린 일종의 여성 꼰대판 ‘라 떼는 말이야’로 비쳐지는 모습도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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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 공감이 갔던 대목 중 하나다. “오늘날 청년들이 남녀대결 프레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반발하는 것은 ‘최종 보스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평범한 개인들에게 연대 책임을 요구하는’ 불공정한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보기에 남성들이 연합하여 여성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남성 카르텔’ 프레임은 현실에 존재하는 권력, 자본 카르텔을 붕괴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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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 성대결로 치닫는다면 그걸 좋아라 할 집단은 결국 정말로 이 사회를 지배하는 카르텔일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남자 출입금지’ 시위를 하며 여성들만의 시위를 벌이는 것은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겠다.’던 전공투의 결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자고로 남녀차별과 불평등의 문제는 생물학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계급의 문제요, 사회적 불평등 위의 지표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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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20대 남자들에게 ‘잘못하지 않은 일에 사과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 또한 시사하는 바 크다. 역시 ‘여성들이 부당하게 당해 온 과거’의 반작용이기는 하겠으나 최근 몇 년간 지켜본 ‘사과’ 소동에 대해서는 나 또한 불만이 많다. 미팅 얘기를 하면서 “너 정도면 얼굴 괜찮다.”는 말을 한 남학생 때문에 ‘대책위’가 꾸려지고 그들의 구미에 맞는 ‘사과’를 하고 ‘학부 섹션·학회에서 모든 공식적 활동 참여를 제한하고, 대학 성평등상담실에서 진행하는 교육을 이수하도록 요구’까지 했던 사건은 파시즘에 가까운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여성들이 얼마나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지”에 대한 반론은 받지 않겠다. 피해의 크기가 가해를 정당화하지 못하며, 그 피해의 크기가 평범한 한 사람의 인권을 짓밟는 도구로 이용돼선 안된다는 상식 때문이다. 그 상식이 틀렸다면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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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이미 20대 초반을 넘어서고 있고 딸은 곧 20대로 진입할 것이다. 그들의 세상은 산부인과에서 여아살해가 공공연히 벌어지고, 수십 년 전의 성폭행범을 죽이고 짐승을 죽였다고 호소했던 김부남 여인이 있었고 ‘성희롱’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생겨났던 나의 20대와는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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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바라는 것은 그들이 남과 여로 갈려서 서로를 메갈로, 워마드로, 한남으로 편갈라 공격하지 않는 일이다. 안 그래도 살아가기 힘들게 돼 버린 세상 (이 대목에서 우리 40대 -나는 아직 40대, 특히 50대)는 무릎을 꿇어도 모자란다)을 살아야 할 그들에게 생물학적인 증오와 투쟁의 대상까지 부가해 주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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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단점이라면 20대를 통칭하고는 있으나 20대 여성들의 목소리를 그리 생생하게 전해 주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겠다. 드문드문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 책은 대개 20대 남성들을 대변하는 입장을 굳건히 노출한다. 하지만 그게 또 장점이다. 그들을 두고 가부장적 질서에 사로잡혀 찌질한 여성혐오나 남발하는 못난이들로 오해하는 기성세대가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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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남녀가 함께 진실로 못난 기성세대가 만들고 판을 치고 굳혀 가는 사회에 맞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 몰카를 만들어 뿌리고 그걸 탐닉하는 남자들에 맞서는 건 남자 일반을 악마시하는 것이 아니라 몰카 유포나 아동 포르노 등 불법을 산업화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고 그에 필요한 법 개선을 위해 함께 목소리를 외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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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오다시피 버닝썬 사건을 처음 사회에 제기한 것은 남자였다. 양진호라는 엽기적인 놈의 정체를 까발린 것 역시 그의 행태에 분노했던 남자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동조하는 남자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남자들이 훨씬 더 많다. ‘남자카르텔’이란 프레임은 오히려 이적행위가 아닐까. <동백꽃 필 무렵>에서 황용식이 말한 것처럼 “너 같이 나쁜 놈도 나오지만 우리는 떼샷인데 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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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요 몇 년 간 가장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 준 사진이 있다. 구의역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김군, 그를 추모하는 남녀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사고 현장에서 절을 올리는 모습을 찍은 부감샷이었다. 그 크고 작고, 야위었거나 한덩치하는 남녀 젊은이들, 그들이 무릎과 머리를 땅에 대는 모습은 뭐라 말하기 힘든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이 갈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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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안에도 계급이 있을진대 구의역 젊은이들의 슬픔과 분노에 공감하지 못하는 딴세계 남녀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 사진 프레임 안의 젊은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쳐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를 협의를 거쳐 이뤄내고, 그 합의에 힘을 실어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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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기성세대들은, 나이 든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응원을 하려면 자기가 무슨 팀을 응원하고 어떤 응원을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책은 공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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