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끼리의 대화에서도 군대 얘기는 말하는 쪽만 게거품을 문다. 듣는 쪽은 데면데면 하다가 말 할 차례가 오면, 침 튀어가며 이등병 시절을 회상하지만 게거품 물었던 친구는 시큰둥해진다. 그래서 군대 얘기는 말많은 사람에게 유리한 게임이다. 나는 주로 불리한 입장이었다.
이 전 포스팅에서 군 시절을 잠시 회상했었다. 그러고 보니 어, 그랬었지, 하는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나서, 하고 싶지 않은 군대 얘기지만 이번 한 번만 짚고 넘어가기로 한다. 그 전에, 나는 아주 약간, 절대 심하지 않은 기계치임을 밝혀 둔다.
신병 훈련 후 보병 연대나 포병에 배속되지 않고 사단 사령부 민심처에 배속된 것은, 훈련의 강도 측면에서 본다면 행운이었다. 정훈병으로 근무하게 된 민심처에는 다양한 임무가 있었는데 그 중 아침, 점심, 저녁으로 영내 방송을 해야하는 책임도 있었다. 3열횡대로 각종 스위치가 정렬되어 있는 방송장비와 영내 곳곳 전신주 꼭대기마다 메가폰처럼 생긴 스피커를 갖추고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온 영내에 군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침마다 애국가를 틀면, 동식물과 벌레 외 나머지 생명체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충성심이 넘치게 되어 국기게양대 방향을 향해 꼼짝도 못하고 애국심 어린 부동자세를 취하게 된다. 목숨 걸고 전장 앞에 나서는 소대장의 임무 만큼 중요한 이 일이 내가 매일 해야 하는 일과 중 하나였다.
그 날도 똑같은 일과는 시작되었고 나는 반평짜리 방송실에 앉았다. 정확히 8시 55분에 애국가를 틀었다. 시간 맞춰 위병소 헌병대 사무실을 나선 헌병 몇 명은 MP라고 씌여 있는 간지나는 동그란 헬멧을 쓰고 가장 군인다운 발걸음으로 사단 사령부까지 행진해 왔다. 그리고 국기게양대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애국가와 함께 국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5초 후 나는 off 쪽으로 스위치를 내렸다. 풍악을 울려야 하는 시간은 매일 오전 9시였다. 수천명의 장병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5초동안 "얼음"했다. 유일하게 움직임을 허락받은 헌병들은 국기를 올리다가 영문도 모르고 다시 내려야 했다. "얼음"했던 수 천명의 장병들 중에는 사단장도 있었다. 9시가 되자 나는 자연스럽게 애국가를 다시 틀었고 장병들은 때늦은 애국심을 고취했고 헌병들은 떨떠름하게 국기를 게양하였다. 그 날은 사단장 휘하, 부대의 지도급 인사들인 참모들과 연대장들이 사단장실에 정기적으로 모여 회의하는 날이었다. 그 분들은 회의 중 일어나서 왼쪽 가슴에 오른손을 올렸다가 엉거주춤 내리고 앉아서 열띤 토론을 벌이다가 5분 후 다시 일어서야 했다. 내가 복무하던 민심처의 참모도 그 자리에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 사단장과 독대하는 영광을 얻었다. 사단 사령부가 모두 같은 건물에 있었기 때문에 불려 올라가는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사단장실에서 사단장과 나, 둘만의 어색한 시간은 쪼그려 뛰기로 누그러졌다. 우렁찬 구호를 포함한 100번의 쪼그려 뛰기가 실시되었고 매 번 10번 째 구호는 생략해야 했다.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임무를 완수하고 사단장실을 나왔다. 긴장했던 땀구멍이 동시에 열리며 아우성쳤지만 사단장 당번병 앞에서도 나는 태연한 척 했다. 이 정도로 끝내다니, 자비로운 사단장님의 배려에 감동받기까지 했다. 사무실에 돌아오니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참모의 감정 실린 옆차기였다. 실제로 맞았는지, 아니면 때린 척만 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 졸려서 못 쓰겠습니다. 담에 나머지 쓸게요. 아직 중요한 얘기가 남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