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신랑과 태국여행을 갔을 때 예약했던 숙소에 묵지 못 하고 숙소 찾아 떠돌게 된 적이 있었다.
<추억으로 남겨지는 것> 편 참고.
https://steemit.com/kr/@megaspore/3mxr1q
어디서 묵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신랑의 말을 아주 깊은 눈으로 진지하게 들어주던 한 외국인의 눈빛이 어쩐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세상에 단 한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아주 오랜 친구가 곤경에 빠진 것처럼,
그리도 진지하게 깊은 눈으로
신랑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어주던 그 외국인.
그 외국인은 그저 습관처럼 그렇게 경청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모르는 사람의 말을 저렇게 진지하게 들어줄 수 있다는 것에 감동을 했었던 것 같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다.
정말 맞는 것 같다.
사람은 무언가 찔리는(?) 것이 있을 때는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 한다.
꼭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한테 자신이 없다던지, 그 사람을 사실은 좋아하지 않는다던지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마음 속 무언가 찔리는 것이 있을 때는 티 안 나게 자꾸 눈을 피하게 된다.
자신감과 상호 존중의 상징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나는 그 중에서도 서로 눈을 쳐다보며 경청하는 것만큼 그것을 똑바로 보여주는 상징이 없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눈을 깊게 바라보며 진지하게 그의 말을 경청한다는 것은 내 내면의 당당한 자신감을 표현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최고의 존중이다.
누군가를 몇분만에 기분 나쁘게 하고 싶으면 그가 얘기하고 있는데 계속 딴청을 피우며 듣는 둥 마는 둥 하면 그 후환이 어떤 것인지 바로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존중받는다는 것만큼
나에 대한 자부심을 높여주는 것도 없으며,
남을 존중한다는 것만큼
나의 인품을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존중받아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회적 존재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
존중하는 사람만이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은 아주 큰 어떤 심오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나는 당신을 바라보고 있어요"
"나는 당신의 마음을 듣고 있어요"
"당신의 말은 나에게 의미가 있어요"
라는 것을 상대방이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내가 또 한번 감동을 받았던 일은 공항 검색대에서 있었던 일인데, 나의 돌쟁이 딸과 함께 약간은 피곤하게 검색을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무슨 말을 했다.
나는 무표정하게 뒤를 돌아 보았는데 어떤 한 넉넉한 체구의 흑인 아저씨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나를 보고 웃고 있는 것이다.
그 흑인 아저씨 역시 한 딸아이의 아빠였으며 자기 딸과 비슷한 우리 딸의 개월수를 물어보며 관심을 보인 것이었다.
나는 살면서 그토록 환한 웃음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의 웃음으로 조금은 피곤하고 조금은 무표정했던 나의 기분이 순식간에 좋아졌고 왠지 공항 검색대가 더 이상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다.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에게 그토록 친근함을 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내가 갖기 힘든 그 사람들만의 재능일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어두운 사람이 그 사람들처럼 바로 되길 원하는 것은 너무나 큰 욕심이겠지만
그저 우리네 인생이, 우리네 행복이, 우리가 인생에서 원하는 것들이 사실은 그리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님을 그들을 통해 깨달았으면 한다.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며 그의 마음을 경청해준다는 것.
모르는 누군가에게 바라는 것 없이 환한 웃음을 보여준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어렵고 대단한 것도 아니나 그것은 우리의 얼었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줄만한 실로 어마어마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졌으면 한다.
그리고 바로 '나' 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