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megaspore(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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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 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부러웠다.

<사랑한다>편 참고.
https://steemit.com/kr/@megaspore/5ygfjy

사랑이란 감정이 무언지 몰랐다.

사랑을 해야 하는 대상은 알았다.

나를 자신의 생명처럼, 남편 없이 딸들 잘 키우는 것을 유일한 삶의 동력으로 살아온 엄마를 보며 엄마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고마움과 미안함의 감정이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란 고귀한 감정이려니 그렇게 여겼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느냐 묻는다면 있다고 말하겠다. 바로 남편이다.

그와 있으면 엄청나게 즐거운 것도, 막 아직도 연애 때처럼 설레이는 것도 아니다. 흔히 말하는 열병과 같은 사랑의 정의에 걸맞는 그런 감정이 아니다. (아주 약간 그런 감정은 있다..)

<어쩌다 어른>에서 강신주가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의 부재가, 그가 세상에 없을 때 내가 가장 괴롭게 느껴진다면 그건 그를 사랑한 것이라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생각해 보았다. 누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면 나는 가장 슬플까.

그 사람은 남편이었다.

나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하며 나에게 늘 잘 대해주는 것도, 또 세상에 이런 사람 없을만큼 착한 사람도 아니다. 같이 있으면 자주 으르렁대고 서로를 자주 맘에 안 들어하며 자주 삐지고 서로에게 자주 실망한다.

근데 왜 그가 이 세상에 없으면 나는 가장 슬플까.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바로 그가 나에게 가장 큰 사랑을 보여줘서도 아닌, 그가 정말이지 너무나 좋은 사람이어서도 아닌,
그 없으면 못 살 것처럼 우리가 찰떡궁합이라서도 아닌

진실된 나를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이 세상에 이젠 없다는 슬픔.. 외로움.. 아마 그것일 것이다.

엄마에게 마음껏 어리광을 부리며 어린 시절을 보낸 기억은 없다. 엄마도 딸들이 그래도 말썽 안 피우고 말을 잘 들었기에 그래서 그 시절을 견뎌왔다고 말씀하셨듯이 아주 좋은 딸은 못 되도 최소한 엄마를 두번 상처주는 딸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의 어두움,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들을 엄마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엄마를 더 힘들게 할 수 없었기에. 그러기에 엄마는 내가 아주 클 때까지 나를 알지 못 했다. 매일 얼굴을 봤지만 자신이 낳고 목숨 바쳐 필사적으로 키운 딸이 어떤 사람인지 엄마는 몰랐다. 엄마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몇년전 엄마가 환갑을 맞이해 내가 살고 있는 홍콩에 머물다 가셨는데 그때 엄마가 하신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이번에 너에 대해 많이 알게 된 것 같아..”

삼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몰랐던 것을 단 2주밖에 같이 안 있었지만 객관적인 시간의 길이에 상관없이 우리는 조금 더 친근해졌다. 그 후로 엄마와 울며 싸우기도 하고 또 다시 울며 서로 미안해하기도 하며 우리는 조금씩 친근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엄마를 정말 사랑해 가고 있는 것 같다.

남편과 나는 정말이지 너무나 다른 스타일의 사람이다.

자존감이 땅에 꺼지다 못해 길에 혼자 걸어가면서도 눈치를 보는 나와 정반대로 자신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찬 그 사람.(자신감이 너무 넘쳐 자만했었으나 십년 이상 자존감 바닥인 나와 조율한 관계로 그도 이제 자존감의 적정선을 찾아가는 것 같다)

쉽게 상처 받는 나와 쉽게 상처 주는 그 사람. 그가 관심있어 하는 화제거리를 나는 대부분 이해하지 못하고 또 재미도 없어 하며 내가 관심있어 하는 화제는 그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재미도 찾지 못 한다.

이런 서로 다른 사람이 이렇게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니. 될 수 있다니. 세상 참, 인연이란 참 신기하고 오묘하다. 그러기에 인연이라고 하나 보다.

어떠한 운명의 끈으로 그를 우연히 알게 되었고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그를 통해 사랑과 사랑의 반대면에 자리한 엄청난 고통을 알게 되었고 억눌러왔던 나의 모든 감정의 실체를 그를 통해 알게 되었다. 배우게 되었다.

<인생의 점 잇기>편 참고.
https://steemit.com/kr/@megaspore/72zqdd
<작은 것의 힘!힘!>편 참고.
https://steemit.com/kr/@megaspore/6mrdzg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으나 벗어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의 소용돌이와 운명의 단단한 사슬에 얽혀버린 것 같은 느낌으로 결국 그와 국제결혼에 골인했고 결혼 후에도 엄청난 서로의 밑바닥과 내 자신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추한 모습, 끝까지 이기적인 나란 사람의 밑바닥을 보인 세월이 이제 십년 가까이 되간다.

그 세월을 나와 함께 통과한 그는 이제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나는 이제 그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와 나와의 관계를 만남부터 현재까지 살펴보며 나는 어떠한 희망 같은 것을 갖게 되었다.

그 희망은 사람이, 너무나 다른 것처럼 서로 이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과도 우리는 사랑하며 함께 살 수 있다는 것. 그와 손 꼭 잡고 혼자였으면 차가웠을 인생의 길을 조금은 따스하게 사랑의 햇빛 받으며 산책할 수 있다는 것. 나는 그것을 믿게 되었다.

앞으로도 나의 인생의 길에서 어떠한 운명의 끈이 나를 이끌어 누군가를 또 만나게 될 것이고 그 길에서 또 서로를 밀치기도 또 손 내밀어 일으켜주기도 하며 그와 인연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인생은 정한대로 흘러가지도 않고 내가 거부한다고 해서 올 것이 안 오는 것도 아니다.

어떠한 인연이든, 운명의 장난처럼 보이는 불운처럼 보이는 일들도 나에게 발생했다면 그것은 언젠가는 그것의 의미를 나에게 보여줄 것이다. 이런 의미가 있었기에 그 사람이 나에게 다가왔고 그 일이 너한테 일어난 것이라고.

인생이 참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맘 먹은 대로 꼭 되지도 않고 또 맘 먹은대로 되도 왠지 모르게 항상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것이 인생이고 또 인간이란 존재인 것 같다.

하지만 이 허한 마음 속에 누군가 나에게 온기를 전해주는 단 한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와 손 꼭 잡고 이 삭막한 인생길을 산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내가 사랑하는 그는 내 앞에 없을 것이다. 아니면 그는 있는데 내가 그의 앞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은 내 생각보다는 좀 더 빨리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함께 밥 먹고 몸은 좀 괜찮냐고 안부를 물어주는 이 순간을 너무 평범하다고, 매일 일어나는 일이라고 그 보석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이가 지금 내 앞에 있다는 것. 나와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준다는 것에 대해 매순간 감동할 수 있는 그런 현명한 내가 되고 싶다.

현재를 감사히 여기고 즐길 수 있는 지혜를 갖추기 위해서는 그 변하지 않는 진리를 자각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따스한 눈길로 요즘 몸은 좀 괜찮은지, 마음은 어떤지 진심이 가득 담긴 한마디를 건네는 오늘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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