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장 흔하게 범하는 실수는 사람을 단편적으로 보는 것이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활발한 사람, 내성적인 사람, 부지런한 사람, 게으른 사람, 똑똑한 사람, 어리숙한 사람 등등으로.
이러한 실수는 가장 흔하게 범해지고 우리가 받는 상처 중의 가장 큰 부분도 바로 이것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으로 ‘딱’ 분류가 되어 버렸을 때. 혹은 내 자신이 나를 이러이러한 사람으로 ‘딱’ 분류를 해 버렸을 때.
내 자신이 딱 분류가 되어 버린 순간, 나는 더 이상 희망과 가능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이미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인간은 한마디로 간단히 정의될 수 없는 복잡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렇게 정의하려 하면 이러한 면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고 저렇게 정의하면 또 다른 면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기 모습을 보고 자기 스스로 놀란 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게 나 맞나? 나 이런 사람이었나?’
그것은 나의 긍정적인 면일수도, 나의 사악한 면일수도 있다. 잠 자기 전에 악마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경험은 누구나 있었을거라 말하던 책의 한구절이 생각난다.
그래. 우리는 그런 존재다.
우리는 선하지만도, 악하지만도 않은, 언제나 가능성이 있는 존재. 꼭 긍정적인 의미의 가능성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조금만 내 자신을 바로 보는 것을 소홀히 하면 언제든 옳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늘 내가 가야하는 삶의 방향을 맞춰가야 한다. 한번 맞춰 놓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그 방향을 세심히 조정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옳음’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리고 내 자신이 죽도록 창피해서, 갖다 버리고 싶을 정도로 형편없는 내가 눈 앞에 보인다 해도 맨날 울고만 있을 필요는 없다. 한바탕 울어버리고 새로운 오늘에 새로운 나 자신을 세워 나갈 수 있다.
왜냐면 우리는 복잡한 인간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내가 알고 있는 그 한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조차 알지 못하는 내가 있다. 그것은 그저 아직 드러나지 않은, 내가 드러내주기만을 기다리는 또 다른 나이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항상 ‘옳음’을 향해 꾸준히 방향을 조정하며 살아가고, 나도 내가 원하는 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자.
어쩌면 내 인생을 막았던 가장 큰 적은,
나조차 나를 못 믿었던 ‘나’ 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