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이용하지 않고 수첩에 글을 써봤는데
손글씨가 이렇게 힘든 거였나?...
수첩 두장 쓰는데 손가락이 너무 아프다.
대충 휘갈겨써도 마찬가지다.
학교 다닐 땐 어떻게 그 많은 걸 필기를 했지?
깜지는 또 어떻게 한 건지..
안 하다보면 다 퇴화가 되는지
손가락은 이제 터치하는데 익숙해져서
좀만 힘들게 해도 안하고 싶어한다.
터치폰 나오기 전에는 꾹꾹 버튼 눌러 장문의 문자도
잘 보냈었건만..
전화번호는 이제 가족 전화만 겨우 외운다.
사전은 종이사전 필요없다. 핸드폰만 있으면 오케이다.
세상이 편리해져서 좋지만
편리해질수록 쓰지 않는 기관은 힘이 약해지는 것 같다.
금방 힘들어진다.
사회는 잘 살게 됐지만 사람들은 더 힘들어졌을지 모른다.
사람은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할 때
힘이 더 강해지고 덜 힘들다고 느끼는가보다.
그러니 무조건 편리해지고 무조건 돈이 많고
무조건 좋은게 좋은거 아니다.
가끔은 불편해야 삶이 역설적으로 덜 힘들어진다.
가끔은 싸워야 감정이 더 좋아진다.
항상 좋을땐 좋은 것도 못 느끼고 그래서 지루하다고 느낀다. (사실은 좋은건데 좋다고 못 느낀다) 가끔은 억지로라도
불편을 자처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세상은 친구 사귀기도 정보를 얻기도 어디를 가기도
모든 것이 다 편리해졌다.
우리는 예전에 비하면 지금 행복에 몸부림쳐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린 지금 행복에 몸부림 치는게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못 찾아 몸부림치고 있다.
마냥 좋은 것은 결국 좋은 게 아니다.
나도 마냥 좋은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
인간적인 사람이 되자.
화도 내고 눈물도 흘리고 크게 웃고 부끄러워
쑥스러워 하기도 하고 실수도 하고 사과도 하고
밝기도 하고 조용하기도 한 사람이 되는 것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그런 인간적인 면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자.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짜 인간이다.
사람들은 인간적인 사람에게, 거기에서 매력을 느낀다.
마냥 좋은 건 좋은 게 아니다.
하지만 마냥 나쁜 건 그냥 나쁜 거다.
내 생활이 마냥 나쁘다면 그것은 참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나에게 마냥 나쁘게 대하는 사람에게는 화를 내고
난리를 쳐서라도 나를 막 대하지 못 하게 해야 하고
나의 마냥 나쁜 습관은 아무리 나라도 인정하고 고쳐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생활이 편리해지면서
점점 마냥 편한 생활만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내려진 축복이자 저주인
'적응' 이라는 능력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편함이 찾아와도 행복은 잠시,
더 편안함을 추구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약간의 불편함도
이제는 우리에게는 고통이 되버린다.
인터넷 상에서 자신의 얼굴과 진상(?)을 모르고
본인을 칭찬해주는 사람들이 많은 사람이라면
실생활에서 그를 조금이라도 비난하는 사람을 만나면
금새 평정심을 잃어버린다.
그러니 너무 '좋아요'에만 집착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엄청 집착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수시로 '좋아요'가 한개 더 늘었는지 두개 더 늘었는지 찾아보게 된다..ㅡ_ㅡ^)
어릴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어릴 때에 너무 많은 명성을 얻는 것이 저주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 명성에 익숙해져 그 이상의
큰 자극이 없으면 행복을 느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고 잘 살고 있는데 억지로 모든 돈을 버리고
산 속에 들어가 불편함을 자처할 필요는 없다.
인생이란 누구에게나 비슷한 크기의 고통이 찾아온다고
하니까. 단지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가 억지로 불편을 자처하지 않아도 우리에게는
원하지 않는 불편함이나 고통이 찾아오게 마련이고
알아서 찾아온 그것을 그저 우리는 겪고 견뎌야 한다.
그 과정은 무지 고통스럽고 이러느니 죽는게 낫다고
생각될 정도일 때도 있겠지만,
그 과정을 견디고 나면 나는 이제 예전의 내가 아니다.
강해진 내가 되는 것이다.
강해진 나는 예전보다 덜 두려워하게 되고
오히려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격려해줄 여유를 가진
멋진 사람이 된다.
그러니,
찾아오는 불편을 환영해주진 않더라도
거부하진 말자.
그건 어쩌면 우리가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는 황금같은 기회인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