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부터인가 금융권에 ‘기부’라는 팻말을 내세워 지지층을 쌓고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실 기부라는 것은 매우 자발적인 행동이고 선한 의도로 이루어져 온 것이 보통이다. 그렇기에 보통 기부천사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들에겐 엄청난 찬사와 동시에 꽤나 강력한 신뢰가 형성되게 된다.
한때 기부로 유명해졌던 연예인들이 그 당시 CF에 꽤 많이 얼굴을 비추었다는 점을 마케팅에서 신뢰의 중요성과 연관 지어 생각했을 때, 기부로 인해 형성되는 신뢰도가 얼마나 높은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사람간에 관계에 있어서는 물론이고 인기와 이미지로 먹고사는 연예인의 경우엔 더없이 필요한 것이 신뢰이다. 그런데 이들 연예인보다도 더 신뢰를 필요로 하는 이들은 바로 금융권 종사자들, 또는 금융거래의 마스터처럼 보이도록 발만 살짝 걸쳐둔 사기꾼들이다.
요 몇 년 사이 페북같은 sns를 기반으로 삼아 기부와 재력을 위시하며 꽤 여럿의 사기꾼들이 등장했다. 처음엔 시장바닥 시정잡배같은 양아치들이 적당히 팔로워만 늘려다가 파는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그 중 몇 양아치의 아이디어를 아주 크게 뻥튀기해 사기쳐먹으려 하는 금융사기꾼이 등장한 것이다.
재력을 한껏 위시한 다음, 그 재력을 상당부분 기부에 썼다며 질투와 의심 대신 신뢰와 존경을 쌓아갔다. 애초에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기부문화가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 단순히 기부했다는 인증하나만 있으면 그 사람은 마음이 따뜻하고 진정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보자.
사기꾼들이 자랑하는 수백억의 자산은 단기간의 트레이딩으로 벌기 힘든 금액이다. 씨드머니가 어마어마한 수준이라면 모를까, 마음씨 착한 흙수저가 그만한 돈을 버는 것은 어디 동화에나 나오는 이야기거나 로또맞은 확률보다도 적은 확률의 우연일 뿐이다. 절대 연구나 실력으로는 단기간에 적은 씨드머니로 그만한 성과를 낼 수 없다.
그리고 사기꾼들은 그것의 반에 반도 안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공통적으로 자신의 낮은 학벌을 오히려 연민과 공감, 반전의 성공신화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참 재미있는 일이다.
이번에 아주 거짓말의 끝판왕을 보여주고 있는 ‘기부청년’ P씨의 경우에도 (결국 거짓말이라 인정했지만) 수천억을 운용해달라고 홍콩 펀드운용사에 스카웃이 되었다고 했는데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재야의 천재가 아닌 이상 대한민국 최고봉인 sky의 재학생도 가기 힘든곳이 그가 말한 대형 펀드운용사이다. 학력 차별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 외국엔 스탠포드, 하버드, mit, 청화대 등등 수두룩 빽빽한 천재들이 깔려있는 마당에 30줄이 넘어서까지 지방거점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을 홍콩 대형 펀드운용사가 스카웃한다..? 신뢰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고 이 바닥의 상식을 한참 벗어난 이야기를 쏟아내는 대도 그가 남들에게 신뢰를 받고 지지층을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앞서말한 '기부' 였던 것이다.
나는 '아너 소사이어티'라는 단체의 기부 인증에 대해 그리 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지 않다. 뭐 기부문화를 활성화시키고 기부자들의 명예를 지켜준다는 그런 소신은 정말 대단히 멋진 것이나, 요 몇년간 아너 소사이어티는 사기꾼들이 신뢰를 얻기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물론 저 기관 자체와 설립자들의 의도엔 더없는 지지를 보내고 존경해 마지않는다.)
즉, 아너 소사이어티의 역할이 역기능으로서 마치 단체의 팻말을 든 자에게 '선함을 보증'해주는 역할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유명인들이 기부자로 가입되었다는 저 단체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있는 상태인데 사실 아너 소사이어티는 기부액 수로만 가입을 시켜줄 뿐이지 별다른 인성에 대한 검증이나 직업에 대한 검증을 거치지 않는 듯하다. 그런데도 일단 기부를 했고 저런 단체의 인증을 받았으니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p씨를 비롯해, 그 이전의 금융사기범들은 자발적으로 기부를 티내는 것이 아닌 이러한 방식으로 '타의에 의한' 것처럼 자신의 기부를 드러내 그 신뢰를 배가시켜온 것이다. 그렇게 밝혀진 기부는 언론에 의해 살이 입혀지고, tv나 신문, 유명 잡지에 나와 인터뷰나 강연을 하면서 점점더 몸집이 커지며 범접할 수 없는 하나의 '힘'이 되버리는 것이다. 그것도 대중들의 '신뢰'로 만들어진 아주 강력한 힘.
이런 현상의 근본을 보면 사실 이것은 아너 소사이어티의 기부 인증이 주 문제가 아니다. 기부 인증은 순기능이 더 많기에 나쁜 행동이라고만 비판할 수 없다. 그저 지금 역기능이 계속 나오고 있기에 비판적 시각으로 봐야할 뿐 .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기부와 신뢰를 연결짓는 대중들의 행태이다.
다른 것보다도 특히나 더 기부에 대해 너무 극렬하게 반응한다. 일단 '기부 천사, 기부 청년, 기부 가수, 기부~~'가 붙으면 그 사람의 다른 행동들은 버프효과를 받아 두배 세배 더 멋지고 의미있는 행동이 된다. 이상한 행동을 해도 왠만하면 이해가 먼저 수반된다. 바로 그게 문제다.
기부하는 방식도 여러가지가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할부'의 개념도 기부에 있다. 여러 례에 걸쳐 기부금을 나누어 낼 수 있는데 이는 강제가 아니기 때문에 얼마간을 약정해놓고 기부를 안해도 상관이 없다. 그리고 세상에 기부자가 주기 다는데 거기에 대해 "왜 안주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가수 김모씨의 경우에도 준댔다가 안준 경우가 허다한데도 해당 단체들은 부당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다. 결국 그가 한 대학에 기부금을 주기로 했다 이를 말없이 취소하는 바람에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학생들의 사비로 메꾸는 헤프닝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기사 한 줄 제대로 본적이 있던가? 받는 입장에선 목소리를 잘 내지 않기때문에 우리가 접하지 못할 뿐이다.
대부분 사기꾼들이 수십억을 기부했다는 말을 하는걸 보면 100% 약정 기부방식이다. 그만한 금액이 지금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몇 억 기부했다고 보여주면 그에 감동받은 멍청한 투자자들이 알아서 돈을 갖다 바치기 때문에 후에 추가로 기부해서 좋은 놈 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 생긴다.
한마디로 남의 돈 땡겨다가 써놓고 마치 기부는 자신이 다한것처럼 하는 것이고 동네 반상회비로 명절선물 사놓고 떡하니 반장이름으로 선물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 기부하는 이유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기부는 세액공제가 된다. 한도는 있지만 납부세엑이 커질수록 기부금 세액공제는 그 파괴력이 강해진다. 이를 통해 자신의 재단이나 자신의 가족친지가 운영하는 재단, 교회 등에 기부할 수도 있고 종교단체를 통해 공제와 자금세탁을 동시에 할 수도 있다. 일반화의 오류라고? 아니, 우리는 수도없이 많은 종교단체가 자금세탁에 연루된 것을 어렵지 않게 보아왔다. 아직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부정할 이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연예인들 사이에 한때 '아프리카 마을에 우물 만들어주기' 기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너도나도 앞다투어 카메라를 대동해 땀뻘뻘흘리며 아이들을 안아주고, 우물펌프를 만드는 과정을 심각한 표정으로 듣는 장면들을 내보냈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 아니, 지금 뿐만 아니라 벌써 수년전부터 일부 언론들이나 기사에선 그 우물기부의 부작용들을 비판했다. 이후 관리는 커녕 녹슬고 관리되지 못한 우물펌프에 기생충들과 병균이 득실거려 병에 걸려가는 마을 아이들, 제대로 위치선정조차 하지않고 급하게 돈만받아 우후죽순 아무때나 박아버리고 사진만 찍어간 우물펌프들 덕에 이제 더이상 물이 나오지 않는 펌프들 등등... 그냥 연예인들은 자신들의 인기를 위해, pd들은 시청률 좋은 한편의 감동다큐를 찍어내기 위해 우물펌프를 마구잡이로 기부했을 뿐이다.
기부는 분명 좋은 행위이고, 이기적 행동을 기반으로 발전해온 인류의 특성에 비추어 봤을 때나 다른 생명체들과의 수준과 비교해 보아도 지극히 고등적인 자기희생적 행동이다. 한 마디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지고의 가치를 지닌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행동도 순수한 기부에 한할 때의 얘기일 뿐, 모든 기부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특성들을 이용한 기부가 너무나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기부로 쌓은 신뢰가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그들에게 보낸 존경과 신뢰가 자신의 피와 눈물로 돌아오는 중이다.
분명한 건 '기부=신뢰'로 받아들이는 작금의 인식은 그리 좋은 결말을 맞지 못한다는 것이다.
감사합니다.